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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l 12. 2024

초록의 시간 801 사과와 수박 사이

애플수박이랍니다

벚꽃 잠깐 꿈결처럼  흩날리던 자리에

아련한 연둣빛 신록 물들기 시작하다가

덩굴장미 붉게 송이송이 맺히고

장미 이울기를 기다려

더위가 덥석 한달음에 밀려오면

능소화 고운 주홍빛이 고개 내밀어요


장마 시작될 무렵 보라 수국이

수줍은 미소 건네며 낯빛 바꾸어 갈 때

신록은 어느새 초록으로 영글고

나리꽃 성큼성큼 피어났다가

허리 굽히며 시들어가는 자리 비집고

분홍빛 배롱나무꽃들이

수줍게 피어납니다


피고 지는 꽃들 사이에서

초록은 무심히 진해지고

그러다 어느덧

청록이 지천입니다


꽃들이 피고 지고

이어달리기를 하는 사이에

내가 좋아하는 사과는

점점 상큼한 맛을 잃어가고

빗물에 말갛게 씻은 얼굴로

올망졸망 자두 노랑 참외 달콤 복숭아

그리고 줄무늬 수박이 한데 모여

달콤한 여름잔치 중입니다


울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과일대장 수박의 계절이니

아삭하고 풋풋하고 새콤한 사과는 

푸르스름 햇사과 나올 때까지

잠시 마음에서 내려놓고

사과에서 수박으로 눈을 돌립니다


나 어릴 적에는 식구들이 많아

큼직한 수박 한 통이 금방 껍데기만 수두룩

이제는 식구가 줄어 한 통이 부담스러워요

그래서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미니미 수박이 눈에 들고

손에 들어옵니다


사과처럼 손에 들고

깎아먹을 수 있는 귀여운 수박이라

이름도 애플수박이랍니다

깜장 애플수박이라는

재미난 이름표를 붙이고 있어요

누군지 내 마음을 읽으셨나 봅니다

손안에 들어오는 사과 같은

수박이 있으면 좋겠다고

엉뚱 생각을 했었거든요


애플수박이 재미난 것은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자란답니다

장마철 땅에서 익어가는 커다란 수박은 

빗물에 젖어 상하기도 쉽고

달콤함도 덜하다는데

애플수박은 땅에 닿지 않고

공중에 붕 떠 있으니

병충해에도 강하고

햇볕을 고루 받아 맛도 좋고

그만큼 달콤하다고 해요


비 머금은 하늘 아래

커피 향이 좋듯이

수박 향도 좋아요

커피는 현실 향기로 개운하고

수박은 기억의 향기로

달콤합니다


오늘은 큰맘 먹고 애플수박 대신

큼지막한 수박 하나 사서

조각조각 그리움을 나누어

너무 멀리 있어 볼 수 없는 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 왁자지껄

수박파티 어때요

비록 상상일지라도

벌써부터 마음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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