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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l 13. 2024

초록의 시간 802 나른한 슬픔

커피 친구 강냉이

오다가 주웠다는 듯이

슬픔에 관한 이야기를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철이 조금 들었다는 걸까요


내 이야기든 남의 이야기든

참 슬픈 이야기를 슬픔의 깊이만큼

재미나게 말할 수 있다는 건

이미 어른의 마음이 되었다는 걸까요


나른한 주말 비스듬히 기대앉아

슬픔보다는 고소함이 필요한 순간

커피의 개운함에 강냉이의 고소함

알알이 파사삭 강냉이 터뜨리며

무심히 웃어 보려고

커피 친구로 강냉이 한 줌을

나란히 곁에 둡니다


날씨가 습기를 머금어서인지

보송함 대신 눅눅함 품은 강냉이가

파사삭 부서지지 않고 바그르르 뭉개지며

커피의 개운함을 오히려 방해하지만

친구니까 봐주기로 합니다


그렇군요

공기는 습기를 머금고

빨래도 습기를 끌어안

나는 고소함 대신

나른함에 늘어집니다


늘어진 상팔자라고 생각하며

일부러 소리 내 웃어 봅니다

사진 속에서 강냉이를 앞에 두고

눕방이라도 찍듯 늘어져 있는

친구님네 강아지 남매

나른한 시간을 머금고 있는

내 친구인 셈입니다


금봉이와 탄이 너희 남매도

나처럼 주말의 나른함을 머금고 있구나

강냉이 한 줌 시들하니 옆에 두고

나는 티브이 채널을 요리조리

무의미하게 돌려가며 생각을 멈추는데

너희는 우두커니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지

아니면 강냉이멍이라도 때리는 건지~


친구님네 강아지 남매 사진을 보며

커피와 강냉이가 어울리듯이

강아지와 강냉이 강강커플도 

제법 어울린다는 엉뚱 생각에

실없이 피식 웃어 봅니다


습기 잔뜩 머금은

나른함이 몰고 온 슬픔도

이렇듯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그저 다행입니다


근데 웬 슬픔이냐~고

물색없이 물으신다면

슬픔과 기쁨 둘 중에

눅눅함과 나른함이 어울리는 건

슬픔이라고 답할 수밖에요


인생은 어차피 슬픔과 기쁨이고

순간순간 차오르는 감정도

슬픔 아니면 기쁨인데

나른한 기쁨보다는

나른한 슬픔이

더 잘 어울리니까요


슬픔은 습기 가득 눅눅한 거라

슬플 땐 나른하게 늘어지지만

기쁨은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올라서

탱탱볼처럼 팔짝 튀어 오르니까요


게다가 슬픔과 기쁨은

친구님네 탄이와 금봉이처럼

티격태격 현실 남매이고

인생의 두 얼굴이라서

돌아보면 슬픔이다가

돌아서면 기쁨이니

어차피 한 끗 차이


늘어지다가 튀어 올라도

슬픔 속에 기쁨 잠깐 보송하고

기쁨 속에 슬픔 눅진하게 머무르는

울고 웃는 인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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