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88 볼품없다는 말

뽀드득 거울을 닦으며

by eunring

아침에 눈을 뜨면

안경부터 집어 듭니다

세수하기 전에 안경부터 닦아요

안경이 흐리면 눈앞도 흐려지고

마음도 덩달아 흐릿해지니까요


세수를 하고 안경을 쓴 다음에는

세면대 위 거울을 닦습니다

거울이 맑아야 내 얼굴도 맑아지고

그리 곱지 않은 얼굴이라도 맑아 보여야

내 마음도 더불어 해맑아지니까요


안경을 닦고 거울을 닦는 일은

매일 잠에서 깨자마자 습관처럼 하면서도

창문을 닦는 일에는 게으름을 피웁니다

뽀드득 소리 나게 창문을 닦으면

유리창 밖 세상도 더 맑고 환해질 테지만

선뜻 창문을 향해 손이 가지 않아요


안경을 닦는 일도 거울을 닦는 일도

창문을 닦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거든요

입김을 호 불어가며 뽀드득 소리 나게

유리창을 닦는 건 순진무구 동시에 나오지만

뽀드득 소리 나게 마음을 닦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으니까요


안경을 닦고 거울을 닦고

물끄러미 거울 속 나를 바라보다가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득 부끄러움이 앞서는 건 왜일까요?


안경을 닦고 거울을 닦아도

거울 속 내 모습과 거울에 비친 내 마음이

여전히 작고 여리고 부실하고 볼품없어서

내가 나를 바라보기 부끄러운 걸까요?


볼품이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겉모습이나 모양새를 말하는 것이니

볼품이 없다는 말은 보잘것없다는 말이죠

작고 볼만한 가치가 없을 만큼 하찮아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죠


안경을 닦고 보아도

거울을 말끔히 닦고 보아도

여전히 작고 부실하고 볼품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젖은 빨래처럼 후줄근해지다가

크고 넓고 푸르른 하늘을 품에 안은

작고 여린 나뭇잎들을 보며

위로를 삼습니다


눈부신 햇살을 머금으며

당당하게 초록으로 반짝이고

바람의 속삭임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나뭇잎사귀들 사이로 하늘이 눈부십니다

작고 여리지만 초록빛으로 야무진

작은 잎새들 사이로 하늘이 웃고 있어요


작고 볼품없다는 말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속담도 있죠

제비는 작아도 강남 간다~

저기 남쪽 먼 나라 강남까지

작은 제비가 날아가고 또 날아오듯이

작고 힘없고 볼품없다 해도

야무지게 제 몫은 한다는 의미거든요


위로의 한 마디는 또 있어요

거미는 작아도 줄만 잘 친다~

겉모습이나 겉모양이나 모양새와 상관없이

묵묵히 할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제비보다 크고 거미보다도 훨씬 큰

나를 위해 뽀드득 창문을 닦아야겠어요


작고 보잘것없고

하찮고 볼품없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 온 마음을 다해

창문 밖에서 분주하게 펼쳐지고 있는

눈부신 세상과 마주하고 있는 나를 위해

뽀드득 소리 나게 유리창을 닦아줄래요


작고 여린 잎새들의 싱그러운 초록을

창문으로 가득 안아들이고

잎새들 사이로 눈부시게 웃고 있는

햇살과 바람도 안아줄래요


제비가 강남을 오가고

거미가 부지런히 줄을 치듯

지금 이 순간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비록 작고 볼품없을지라도

애쓰고 있으니 이미 충분하다고

토닥토닥 어깨 다독이며 말해줄래요


사전에 볼품없다는 말은 있어도

세상에 그 어느 것 하나도

볼품없는 건 없다고

다정히 속삭여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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