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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493 아예사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움처럼 톡톡~

by eunring

아예사 꽃망울들이 톡톡 흩뿌려진

분홍 꽃 편지지에 적힌 친구님의 마음을

오늘 우연히 다시 읽었습니다

무언가를 찾으려고 서랍을 뒤적이다가

십수 년 전 친구님의 편지가

인연인 듯 손에 잡혔거든요


어린 시절 함께 놀던

몽실언니 닮았던 친구가

문득 그립다며

친구님이 말을 건넵니다


'그때는 그 친구도 지천으로 피던 꽃도

그리 곱고 예쁜 걸 왜 몰랐을까요?

곱다 예쁘다 사랑한다~

말이라도 한마디 더 건넸더라면

지금 그리움이 조금은 덜했을까요?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오래전에 받은 친구님의 편지가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날아와

팝콘 수국 아예사 꽃처럼

그리움 안고 피어납니다


친구님의 편지를 천천히 다시 읽고

곱게 접어 서랍에 잘 넣어두고는

아침에 만난 아예사 꽃을

다시 보러 나갔어요

그 사이 그리움의 분홍빛이

얼마나 진해지고 깊어졌을까

보고 싶었거든요


아예사는 처음이라

어떻게 피어날까 궁금한 마음에

스치고 지날 때마다 걸음을 늦추며

가만히 눈여겨보곤 했었어요

어떤 표정으로 웃음 머금을까

고운 얼굴빛은 어떤 빛으로 물들까~


비의 계절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는 듯

팝콘처럼 톡톡 피어나는 아예사 꽃이

처음에는 해맑은 라임빛 꽃송이로 뽀그르르

하루하루 지날수록 연분홍 빛을 머금다가

라일락 꽃송이처럼 사랑스럽게 여물어갑니다


첫 마음을 잊지 말자고들 하는데

순하고 맑고 연하디 연한 라임빛이다가

연분홍이 살며시 물드는가 했더니

분홍빛으로 점점 진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변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현실이고

달라지는 게 아니라 더욱 깊숙해지는

그리움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누군들 알알이 귀한 첫 마음을

부질없이 놓아 보내고 싶겠어요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흐르듯 표정도 변하고

얼굴빛도 달라지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예사 꽃을 마음에 담습니다


사람이 그러하듯 꽃들도 그러하겠죠

재잘재잘 얼굴 내미는 꽃도 있고

수줍게 볼을 붉히며 피어나는

고요한 꽃도 있어요


아예사 꽃은 소리도 없이

빙그레 웃으며 가만가만 피어납니다

얼굴빛이 다르게 물들어간다고 해서

마음이 변하는 것이 아님을

이제 알 것 같아요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하는 것임을

소리 없이 튀겨지는 팝콘처럼 묵음으로 피어나

그리움의 빛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아예사 꽃을 보며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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