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94 울 엄마의 손
엄마랑 손 잡기
엄마의 손을 잡아드렸어요
가만히 잡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어요
엄마의 손을 잡아본 것이 얼마만인지
문득 마음 한구석에 짙푸른 휘장이 드리운 듯
진한 파랑의 바람이 부는 듯 잔잔히 일렁였어요
엄마의 손을 잡아드렸어요
엄마 손은 늘 어린 동생들 차지여서
어릴 적에 엄마 손을 잡아본 기억이 드물고
정답게 엄마 손을 선뜻 잡거나
와락 엄마 품에 안기지 못한 아쉬움이
아직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거든요
맏이인 나는 딸바보 아버지에게 기대고
할머니 손을 잡고 고모랑 놀았거든요
엄마의 손을 잡거나 엄마 품에 안기거나
엄마에게 기대는 일은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맏이인 내 몫이 아니었으니까요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데
내게는 엄마 손이 약손이 아니라
쭈그렁 할머니 손이 약손이어서
오래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내 아픔을 어루만져줄 약손이
그만 사라지고 말았죠
이제는 내가 부실한 손이라도
엄마의 약손이 되어드려야 하는데
엄마의 손을 너무 늦게 잡아드렸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어요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도
울 엄마 손이 여전히 연하고 부드럽고
따스해서 마음이 놓였거든요
지금이라도 손을 잡아드렸으니
늦었다고 할 순 없는 거라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웃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엄마의 손을
자주 잡아드려야겠어요
내 손보다 작고 여리고
내 손보다 예쁜 울 엄마 손
그러나 다정하거나
상냥하지는 않으셨던
울 엄마는 아마도 엄마 노릇이
한없이 서툴고 어색하셨던가 봐요
엄마 닮은 딸이라 나 역시
다정하지도 않고 상냥하지도 않은 데다
쑥스럽고 어색해서 선뜻
엄마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엄마 손을 잡아드리고
엄마를 많이 안아드려야겠어요
다음에는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겠다는
막연하고 부질없는 희망을 앞세우며
다음 생까지 우두커니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이생에서 아주 잠깐씩이라도
엄마의 엄마 노릇을 해보리라
속으로 다짐해봅니다
한없이 쉽고도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사랑이 별건가요
말로 하기 어색하면 눈웃음을 주고
먼저 살며시 손을 내밀고
무심히 곁을 내어주는 것이
사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