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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25. 2023

초록의 시간 658 미래를 어루만지는~

영화 '교실 안의 야크'

언젠가 친구랑 나눈 톡 수다에서

행복이란 더 바랄 게 없는 상태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더 바랄 게 없다는 것과

더 바라지 않는다는 건

물론 다른 의미지만

행복은 가질 수 있을  만큼

다 가져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게 아니라

부족하고 불편하고 그래서 아쉽더라도

지금 가진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마음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하며

'교실 안의 야크' 영화를 봅니다


은둔의 나라 부탄은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고 해요

어디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행복은

먼 곳을 바라보며 발돋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하는

작지만 귀한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부탄의 수도 팀푸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 유겐은

스스로 교사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바다 건너 먼 나라 호주로 떠나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나중에 퇴직을 한 후 이민을 꿈꾸면서도

히말라야 산맥 깊고 깊은 오지마을

루나나로 발령을 받게 되는데요

8일 동안이나 걸려 가야 하는 곳인데

6일 동안은 산 넘고 강 건너

터벅터벅 걸어서 가야 하는 길이라

새로 산 그의 신발은 엉망이 되고 말아요


당나귀를 끌고 그를 데리러 온

마을 사람 미첸의 장화는 깨끗해서

그가 궁금해하자

진창길을 피해 걷는다고 

미첸이 웃으며 대답합니다

온통 진창길인데~라며

참 이상한 일이라고

그는 고개를 갸웃거려요


'도자기에 담긴 하얀 우유처럼 

순수한 마음은 도자기 컵이 깨져도

여전히 우윳빛'이라는 노래가 인상적이고

마을까지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는데

마을 사람들 모두가 마중을 나와

유겐을 환영하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아이들이 공부에 관심이 많아

모두들 설렘으로 들떠 있다며

목동이나 약초꾼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더 나은 교육을 해 주기 바란다는

촌장의 엄근진 말씀에도 

유겐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해요


56명이 사는 외딴 마을 루나나의

세상에서 가장 외진 학교와

먼지 앉은 책상들이 

유겐에게는 낯설기만 합니다


원해서 교사일을 하는 게 아니라서

더는 못하겠다고 주저앉는 그에게

며칠 뒤 시로 모셔다 드린다는

촌장의 말씀에 마음을 달래며

깜깜 밤에 추울 때 먹는다는

열매를 먹어보기도 하다가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아요


다음날 아침 똑순이 소녀 펨잠이

늦잠에 빠진 그를 깨우러 오는데요

가수가 꿈인 소녀 펨잠의 노래는

어쩜 그리 귀엽고 사랑스러운지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소년 상게에게

그 이유를 묻자 미래를 어루만지는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참 기특하고

신통한 대답으로 웃음을 주고

손녀를 데리고 온 이웃마을 할머니는

녀를 가르치기 위해

불편한 텐트 살림도 마다하지 않아요

유겐은 학교 종을 펨잠으로부터 건네받지만

태양열 발전이라 충전이 되다 말다 해서

대략 난감~


돌아가신 엄마 대신 집안 살림을 하는

촌장 딸 비다는 열 살인데

유겐에게는 선생님이니 

특별히 나무 그릇에 담아 드린다며

어릴 적 할머니가 늘 나무 그릇에 담아 주어서

할머니가 그리워지는 맛이라며 웃는데

순간 마음이 짠해집니다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움을 원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에

며칠 뒤 바래다주려는 촌장과 미첸에게

겐은 겨울이 오기 전까지 있겠다고 합니다

칠판이 없어 벽에 글씨를 쓰다가

칠판 필요하다는 그에게

칠판과 분필을 만들어주는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이 정겹습니다


종이가 귀한 루나나에서는

야크의 배설물로 불을 피우죠

산으로 야크 배설물을 주우러 갔다가

노래 부르는 샬돈을 만나는데요

마을에서 제일 노래를 잘하는 샬돈은

늘 그 자리에서 세상에 바치는

노래를 부른다는데

가장 늙은 야크를 교실에 듀고

필요한 배설물 얻으라고 합니다


야크는 사는 동안 많은 것을 내준다며

'야크의 노래' 가사를 적어주고

노래를 가르쳐주는 장면이 평화롭고

샬돈이 르는 '야크의 노래'는

아름답고 신비로워요


올가미를 던져 올가미에 걸리는

야크를 제물로 바치는데

하필이면 가장 아끼는 야크가 걸리자

슬픈 마음으로 목동이 부르는 노래라는

슬픈 사연도 듣게 됩니다


귀한 종이가 떨어지자

숙소의 바람을 막기 위해 붙여둔

전통 종이아낌없이 떼어

아이들이 쓸 수 있도록 나누어주는 유겐은

이미 아이들의 미래를 다독이고

어루만지는 다정한 모습인데요


약속한 대로 겨울이 다가오자

유겐은 마을을 떠납니다

교육을 받아 나라의 미래가 될 사람들은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고 아쉬움을 건네는 촌장

펨잠의 눈물 그렁한 배웅을 받으며

오던 길을 되짚어 떠납니다


시간이 지나 호주의 한 카페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유겐은

아련한 눈빛으로 문득 허공을 바라보다가

부르던 노래 대신 샬돈에게 배운

'야크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는 이제 행복할까요?


영화 속에서 잠시 여행을 다녀온 듯

아름다움은 소박함 속에 머무르고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부탄의 오지마을

루나나에서 배우고 오는 성탄절 아침

창밖은 어제보다 더 하얗습니다


눈길 조심 밟아

커피 한 잔 사러 갑니다

영화 후 커피 한 잔은

크지 않아도 향기로운

오늘의 행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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