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98 사랑은 순간의 눈부심

손 내밀고 마음 기대며

by eunring

먼저 손 내미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말없이 제자리를 지키는 꽃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

삶이고 사랑인 줄 알았죠


말을 건네는 법도 미처 배우지 못했어요

바람이 무심히 스치고 지나갈 때

바람이 전하는 말에 귀 기울이다가

고개 끄덕이며 혼잣말을 하곤 했어요


혼자 이겨내야 하는 삶도 아닌데

마음을 기대는 법도 배우지 못하고

넘어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주저앉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어깨가 단단히 뭉치는 것도

차마 알지 못했어요


덥석 내밀어도 되는 손인 것을

내밀면 누군가 다정히 잡아준다는 것을

안녕?이라고 인사 건네면 되는 것을

안녕? 내 말에 누군가 안녕~이라고

화답해 준다는 것을 몰랐어요


또박또박 마음의 징검다리 건너면

남실대는 푸른 강물 건너 어딘가에

마음을 잠시 기댈 수 있는 느티나무 같은

누군가의 어깨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어요


웃을 수 없어 얼굴을 숨기고

내어줄 것이 없어 망설여질 때

내 빈 손이 때로 누군가의 미소를 담는

오목한 그릇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또 몰랐어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지치고 힘들면 주저앉아 쉬기도 하고

쉬었다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내가 웃을 수 없을 때 누군가의 미소에

잠시 고단한 마음 기대어도 되는 것이

삶이고 사랑인 것을 미처 몰랐어요


한 걸음씩 다가서서 눈인사를 건네고

다정히 손 내밀어 마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 삶이고 사랑인 것을

느리게 배우고 조금씩 알아가며

지금 이 순간을

또 이렇게 살아갑니다


삶은 순간이고

사랑은 순간의 눈부심이니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초록의 시간 497 친구가 찾아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