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39 우리 집에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초설 이파리들이 시들해지고 있어요
알록달록 작고 어린 단풍잎 같은
이파리들이 곱고 사랑스러워서
창가에 두고 보았는데
한동안 나도 모르게
아마도 첫눈을 기다리느라
창밖 풍경에 더 마음이 쏠렸나 봅니다
꽃보다 곱고 더 여리고
울긋불긋 잎들이 사랑스러운 관엽식물
오색 마삭줄은 초록 잎에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이라
초설이라고도 부른대요
겨울이 오고 처음 내리는
첫눈 감성에 아주 잘 어울리는
희끗희끗한 이파리들이
변심하면 분홍이다가 진홍으로
그러다 빨강으로 얼굴 바꾸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걸이용 화분에 늘어지게 걸어두면
꼬물꼬물 피어나는 새 이파리들이
처음엔 봄꽃 같은 분홍으로 예쁘고
소리도 없이 공기도 정화해 주니
하는 짓마다 참 고마운 이파리들이죠
오색 마삭줄답게 색색의 잎들이 사이좋게
초록잎 빨강잎 연분홍잎 진분홍잎에
하양잎까지 오색 나비가 내려앉은 듯
곱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데다가
꽃말이 하얀 웃음이라니
꽃말까지도 정답습니다
봄이면 하얀 별사탕 닮은
꽃들도 조랑조랑 피어나고
가을이 오면 붉게 물드는
단풍잎도 곱다는데 잠시 딴생각에
그만 건너뛰고 말았습니다
보기보다 까탈스러운 관종인지
나 몰라라 그늘에서 키우면
흥칫뿡 삐뚤어질 테다~라는 듯
새초롬 초록잎이 되어버린답니다
어릴 적 놀이 중에
우리 집에 왜 왔니 놀이가 있었어요
동네 친구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같은 편끼리 서너 명이 나란히 옆으로
조르르 손을 잡고 서서 맞은편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마주 봅니다
한 편이 손을 잡고 우르르 달려 나가며
목소리를 높여 몰아붙이듯이 외칩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소리 모아 외치다가
상대편 앞에서 딱 멈추면
상대편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멈추고
멈추었다가 다시 앞으로 나오며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라고
소리 높여 대꾸하는데요
밀당이라도 하듯이 오고 가며
서로 밀고 밀리고 또 밀다가
상대편의 누구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을 자기편으로 데리고 가는
신나고 재미나고 매정한 놀이였어요
좋아하는 친구를 상대편에 뺏기는 순간
와락 밀려드는 상실감으로
가슴이 싸해지곤 했죠
이긴 편은 이겼다 꽃바구니
진 편은 졌다 분하다~
하며 쿨하게 마무리하는
주고받고 뺏고 뺏기는 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냉정한 승부의 세계였어요
마음에 드는 친구를 빼앗아오는
무정한 게임이었으니까요
앙증맞은 잎들이 올망졸망
사랑스러운 오색 마삭줄을 보고 있으니
어릴 적 친구 뺏기 놀이도 생각나고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 얼굴도
하나둘 떠오릅니다
오색 마삭줄 사이좋은 이파리들처럼
오순도순 정답게 지내던 친구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요
친구 뺏기 놀이도 아닌데
무정하게 흐르는 세월이
어릴 적 동무들을 데려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또다시
눈길이 창문 너머로 향합니다
한 해가 서서히 기울어가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나 봐요
초록 분홍 하양 이파리들처럼
떠오르는 생각들도 알록달록
이파리 하나에 친구 이름 하나씩
무심한 세월이 무정하게
내 곁에서 데려가 버린
하양아 분홍아 초록아~
대답 없는 메아리로 남을지라도
다정히 불러보고 싶은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