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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06. 2023

초록의 시간 639 우리 집에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초설 이파리들이 시들해지고 있어요

알록달록 작고 어린 단풍잎 같은

이파리들이 곱고 사랑스러워서

창가에 두고 보았는데

한동안 나도 모르게

아마도 첫눈을 기다리느라

창밖 풍경에 더 마음이 쏠렸나 봅니다


꽃보다 곱고 더 여리고 

울긋불긋 잎들이 사랑스러운 관엽식물

오색 마삭줄은 초록 잎에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모습이라

초설이라고도 부른대요


겨울이 오고 처음 내리는

첫눈 감성에 아주 잘 어울리는

희끗희끗한 이파리들이 

변심하면 분홍이다가 진홍으로

그러다 빨강으로 얼굴 바꾸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걸이용 화분에 늘어지게 걸어두면

꼬물꼬물 피어나는 이파리

처음엔 꽃 같은 분홍으로 예쁘고

소리도 없이 공기도 정화해 주니

하는 짓마다  고마운 이파리들이죠


오색 마삭줄답게 색색의 잎들이 사이좋게

초록잎 빨강잎 연분홍잎 진분홍잎에

하양잎까지 오색 나비가 내려앉은 듯

곱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데다가

꽃말이 하얀 웃음이라니

꽃말까지도 정답습니다


봄이면 하얀 별사탕 닮은 

꽃들조랑조랑 피어나고

가을이 오면 붉게 물드는

단풍잎곱다는데 잠시 딴생각에

그만 건너뛰고 말았습니다


보기보다 까탈스러운 관종인지

나 몰라라 그늘에서 키우면

흥칫뿡 삐뚤어질 테다~라는 듯

새초롬 초록잎이 되어버린답니다


어릴 적 놀이 중에

우리 집에 왜 왔니 놀이가 있었어요

동네 친구들이 두 으로 나뉘어

같은 편끼리 서너 명이 나란히 옆으로

조르르 손을 잡고 서서 맞은편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마주 봅니다


손을 잡고 우르르 달려 나가며 

목소리를 높여 몰아붙이듯이 외칩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소리 모아 외치다가

상대편 앞에서 멈추면

상대편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멈추고

멈추었다가 다시 앞으로 나오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라고

소리 높여  대꾸하는데요


밀당이라도 하듯이 오고 가며

서로 밀고 밀리고 또 밀다가

상대편의 누구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을 기편으로 데리고 가는

신나고 재미나고 매정한 놀이였어요

좋아하는 친구를 상대편에 뺏기는 순간

와락 밀려드는 상실감으로

가슴이 싸해지곤 했죠


이긴 편은 이겼다 꽃바구니

진 편은 졌다 분하다~

하며 쿨하게 마무리하는

주고받고 뺏고 뺏기는 놀이는

놀이가 아니라 냉정한 승부의 세계였어요

마음에 드는 친구를 빼앗아오는

무정한 게임이었으니까요


앙증맞은 잎들이 올망졸망

사랑스러운 오색 마삭줄을 보고 있으니

어릴 적 친구 뺏기 놀이도 생각나고

함께 놀던 동네 친구들 얼굴

하나둘 떠오릅니다


오색 마삭줄 사이좋은 이파리들처럼

오순도순 정답게 지내던 친구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요

친구 뺏기 놀이도 아닌데

무정하게 흐르는 세월이

어릴 적 동무들을 데려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또다시

눈길이 창문 너머로 향합니다


한 해가 서서히 기울어가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나 봐요

초록 분홍 하양 이파리들처럼

떠오르는 생각들도 알록달록


이파리 하나에 친구 이름 하나씩

무심한 세월이 무정하게

내 곁에서 데려가 버린

하양아 분홍아 초록아~

대답 없는 메아리로 남을지라도

다정히 불러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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