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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Aug 25. 2022

초록의 시간 506 보들보들 복숭아

아삭아삭 복숭아

부드러운 복숭아도 있고

아삭한 복숭아도 있어요

부드러운 복숭아는 보들보들 달콤하고

아삭한 복숭아는 아삭아삭 상큼하죠


보들보들 부드러운 달콤 복숭아도 좋아하고

아삭아삭 상큼한 복숭아도 좋아하는데

혼자 먹을 때는 아삭 복숭아를 먹고

엄마랑 먹을 때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보들보들 달콤 복숭아를 먹어요


아삭한 복숭아는 과도로 껍질을 벗겨내

아삭아삭 먹으면 되지만

말랑하고 부드러운 복숭아는

손으로 살살 껍질을 벗겨낼 때

달콤한 과즙이 조르르 흘러

끈적하게 손을 적시니 대략 난감~


아삭아삭 씹히는 복숭아보다

말랑한 복숭아를 좋아하시는 엄마에게

부드러운 복숭아를 대접해 드리기 위해서는

손에 흐르는 과즙의 끈적함까지도

뭐 그까이꺼~웃으며 감수합니다


보들보들 복숭아를 맛나게 드시며

엄마도 아버지 생각을 하실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저 말없이 웃으실 뿐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던

딸바보 아버지가

죄 없는 복숭아 앞에서 

소리도 없이 화를 내신 적이 있거든요


과일이 지천인 여름이면

아버지는 퇴근길에

자주 과일을 사 들고 오셨어요

어느 저녁 달콤 과즙이 뚝뚝 흐르는

큼직한 복숭아를 앞에 두고

꼬맹이 자매들이 티격태격 다투다가

어린 동생이 훌쩍거리자

딸바보 아버지가 아무 말없이

그 맛난 복숭아 하나를 야구공 던지듯

앞마당에 던져버리셨어요


보들보들 복숭아를 볼 때마다

아까운 복숭아 한 알 내던지기로

훌쩍이는 딸내미를 향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표현하셨던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복숭아 과육처럼 말랑해지고

보드레한 슬픔이 뒤를 이어요


나중에 나중에 복숭아를 볼 때면

아버지를 향그리움의 발자국 따라

엄마 얼굴도 사르르 뒤이어 떠오르겠죠

꿀 뚝뚝 보들보들 복숭아를

어린아이처럼 맛나게 드시던 울 엄마~라고

혼자 중얼거리게 될 나중 그 어느 여름이

지금부터 애틋하고 애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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