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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Sep 06. 2022

초록의 시간 512 인생의 외나무다리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

외나무다리를 건너본 적은 없어요

외나무다리는 노래로 듣곤 했으니까요

나 어릴 적 아련한 기억 속에서

구성진 목소리로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 외나무다리는 구슬프고 애달파요


외나무다리는 내게

물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라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거든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데

나는 외나무다리에서 원수가 아닌

그리운 딸바보 아버지를 만나고

그리고 인생의 외나무다리를 만납니다


가만 생각해보

인생은 한 줄기 외롭고 길고

기다림의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그리고 나는 순간순간

푸르뎅뎅한 슬픔의 물줄기가

어서 빨리 흘러가기를 기다리고

햇살과도 같은 기쁨의 빛줄기가

눈부시게 다가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며

인생의 외나무다리에 서 있는 것 같아요


기쁨은 날개 달고 날아와

한 마리 새처럼 휘리릭 날아가고

그다지 반갑지 않은 슬픔은 

꼼지락꼼지락 느린 걸음으로 다가와

내 곁에 오래 머무르며

기다리는 나를 지치게 합니다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

외나무다리의 가사는

복사꽃 능금꽃의 분홍빛으로 시작하며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서는데


인생의 외나무다리는

야멸차게 내 손을 떨구고

저만치 부지런히 달아나는 기쁨과

내 발목을 잡고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지는

한없이 게으른 슬픔 덕분에

때로 야속하리만치 가혹하기만 합니다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 고향은 아니었고

만나면 즐거웁던 외나무다리도 없었으나

복사꽃 능금꽃처럼 보드랍고 잔잔한

하루하루무심하게도 길게 이어지

기쁨의 시간들도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철부지 어린 꼬맹이 시절로 돌아가

아버지의 목소리로

외나무다리를 듣고 싶어요


인생이 위태로이

외나무다리 건너는 것임을

미처 알지 못하고 철없이 나풀대며

행복하그 시절이 문득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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