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509 부디 행복하시기를
그분의 퇴임식 즈음에
여름의 열정을 갈무리하듯이
차분한 걸음으로 교단에서 내려오시는
어느 교장선생님의 퇴임식을
잠시 생각합니다
뜨겁고 순수하고 올곧게 걸어오신
선생님의 길에 마침표를 찍으시듯
이 여름이 저물어가고
곧 선선한 가을의 시작입니다
모든 계절에 시작과 마무리가 있고
모든 걸음에도 시작과 끝이 있어요
시작은 밝아오는 새벽의 푸른빛이었고
첫걸음을 내딛던 한 청년의 봄날은
여리고 순하고 순수했습니다
시작은 풋풋한 눈부심으로
마무리는 붉은 노을빛 찬란함으로
곱게 물들어 저무는 인생의 길에서
가장 굵고 애틋한 매듭을 지으며
한 걸음 물러나 내려놓고 내려오는
지금은 퇴임의 시간입니다
한마음으로 곧게 걸어오신 길에서
고운 매듭을 짓고 물러나
천천히 모퉁이를 돌아서면
다시 시작입니다
걸어온 길과는 다른 시간 속에서
또 다른 풍경이 새롭게 펼쳐지겠죠
학생들을 도탑게 보듬어 안으시던 품 안에
푸른 하늘과 활기찬 바람과
시간표에 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담으시기를~
퇴임하신 후에도
하실 일을 잘 찾아 행복하게 사시라는
어느 학생의 유쾌한 목소리가
힘찬 울림으로 남습니다
그럼요~꽃분홍 하트에 담긴
철부지 학생의 부탁 말씀처럼
이제 느긋하고 여유롭게
부디 행복하시기를~
눈부신 청춘과 열정의 순간들이
다시 오지 않더라도
지난 순간의 눈부심과 순수함이
차곡차곡 알뜰하게 모이고 쌓여
찬란하게 빛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한 기쁨으로 누리시며
매일매일 如如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