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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Aug 29. 2022

초록의 시간 509 부디 행복하시기를

그분의 퇴임식 즈음에

여름의 열정을 갈무리하듯이

차분한 걸음으로 교단에서 내려오시는

어느 교장선생님의 퇴임식

잠시 생각합니다


뜨겁고 순수하고 올곧게 걸어오신

선생님의 길에 마침표를 찍으시듯

이 여름이 저물어가고

곧 선선한 가을의 시작입니다


모든 계절에 시작과 마무리가 있고

모든 걸음에도 시작과 끝이 있어요

시작은 밝아오는 새벽의 푸른빛이었고

첫걸음을 내딛던 한 청년의 봄날은

여리고 순하고 순수했습니다


시작은 풋풋한 눈부심으로

마무리는 붉은 노을빛 찬란함으로

곱게 물들어 저무 인생의 길에서

가장 굵고 애틋한 매듭을 지으며

한 걸음 물러나 내려놓고 내려오는

지금은 퇴임의 시간입니다


한마음으로 곧게 걸어오신 길에서

고운 매듭을 짓고 물러나

천천히 모퉁이를 돌아서면

다시 시작입니다


걸어온 길과는 다른 시간 속에서

또 다른 풍경이 새롭게 펼쳐지겠죠

학생들을 도탑게 보듬어 안으시던 품 안에

푸른 하늘과 활기찬 바람과

시간표에 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담으시기를~


퇴임하신 후에도

하실 일을 잘 찾아 행복하게 사시라는

어느 학생의 유쾌한 목소리가

힘찬 울림으로 남습니다


그럼요~꽃분홍 하트에 담긴

철부지 학생의 부탁 말씀처럼

이제 느긋하고 여유롭게

부디 행복하시기를~


눈부신 청춘과 열정의 순간들이

다시 오지 않더라도

지난 순간의 눈부심과 순수함이

차곡차곡 알뜰하게 모이고 쌓여

찬란하게 빛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한 기쁨으로 누리시며

매일매일 如如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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