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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Aug 29. 2022

초록의 시간 508 가을이 옵니다

봉숭아 꽃물이 지기도 전에

울 엄마 손톱 위에 머무른

봉숭아 꽃물 아직 진하고 고운데

불쑥 가을이 문을 열고 옵니다

봉숭아 꽃물처럼 붉은빛으로 머무르던

여름날들이 주섬주섬

떠날 채비를 하고 있어요


어느새 반소매 옷이 서늘하고

어정쩡한 칠부 소매 옷으로도

쌀쌀함과 쓸쓸함을 가릴 수 없어

바람막이 옷을 하나 사려고

온라인 상점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혼자 피식 웃고 말아요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바람막이 옷이 아니라

눈물막이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바람막이 옷은 여기저기 많은데

눈물막이 옷은 어디에도 없구나~

중얼거리다가 또 멋쩍게 웃고 맙니다

가을이 눈물주머니 주렁주렁

허리춤에 매달고 오는 걸까요

가을이 눈물 한 봇짐 묵직하게

등에 지고 오는 걸까요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성급한 가을이 문밖을 서성이는데

눈물막이 옷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까닭에

바람 한 줄기 어깨를 스치기만 해도

빛깔도 향기도 없는 눈물방울이 또르르~


미련 없이 뒷모습을 보이고 

돌아서는 여름의 꼬리를 잡으며

가을은 거침없이 얼굴을 들이밀어요

성큼 높아진 하늘을 향해

그리움이 발돋움을 하며 애틋함을 더할 때

신들 바람 따라 여름 흘러간 빈자리에

귀뚜라미 귀뚤귀뚤

눈물 또르르 가을이 옵니다


쓸쓸함의 깊이만큼 예쁘고

방울의 숫자만큼 사랑스러운

가을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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