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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Sep 16. 2022

초록의 시간 516 바람의 얼굴

흔들리는 마음이래요

떠돌이 바람의 얼굴은

천 가지 만 가지래요

제멋대로 떠돌며 제맘대로 날아다니는

바람에게도 수만 가지 표정이 있대요

왜냐면 바람은 흔들림이니까요


바람은 어딘가로부터 불어와

어딘가로 날아가는 게 아니래요

바람은 순간의 흔들림이래요

무수히 흔들리는 얼굴이래요


어딘가에 마음을 기대고 싶을 때

떠돌이 바람도 나뭇잎 사이로 파고든대요

그러니까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들이

이리저리 흩날리는 게 아니라

나뭇잎들이 다정히 속삭이며

흔들리는  바람을 품에 안고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거죠


자유로운 영혼으로 나풀대는

떠돌이 바람도 때로는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가 있대요

그럴 땐 보송 구름 위에 숨어

바람 없다~중얼대며

구름 따라 잔잔히 흘러가는 거죠


바람소리는 시냇물 흐르듯 작게도 들리고

나뭇잎 거침없이 우수수 떨구며

소란스럽게 다가서기도  하지만

바람의 얼굴은 미처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아니래요

흔들린다고 볼 수 없는 건 아니래요

바람이 하얀 꽃잎 위를 스칠 땐

새하얀 재스민 꽃의 해맑은 얼굴이 되고

분홍 꽃망울 곁에 머무르면

몽그르르 예쁜 재스민 꽃망울이 되는 거래요


바람의 얼굴이 초록 잎사귀 사이에서

고요하고 싱그런 미소를 머금기도 해요

그럴 땐 바람이 잠시 쉬어가는 거고

초록 잎새 위에 반짝 햇살이 비추면

바람이 잠깐 졸음에 겨워 눈을 감는 거래요


훌훌 자유로운 바람이 부러워

바람처럼 가벼이 날아오르고 싶을 때

바람이 내 어깨를 툭 건드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대 마음에도 바람 주머니가 있으니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다고

눈물주머니 대신 바람 주머니 활짝 열고

하늘 높이 마음껏 날아보라고~


날아다니고 날아오르다가

고운 향기로 반기는 꽃잎에 앉아보라고

눈물 송이 대신 고운 꽃송이 매달고

꽃인 듯 애틋하게 웃어보라고~


떠돌이 바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머무를 줄 아는 사람꽃이 되어

사람들의 숲에 사는 것도

제법 괜찮은 거라고~


무수히 흔들리며

정처 없이 떠도는 바람을

부러워하는 누군가가 있듯이

머물러 견디고 버티며 사는

인생을 부러워하는 바람도 있는 거라고

바람이 말하는 것 같아요


이런 나를 부러워하는 네가 있듯이

그런 너를 부러워하는 나도 있다고

부질없이 날아다니는 바람이나

속절없이 머물러 사는 사람이나

곱게 피어 하늘거리는 꽃들이나

다를 것 없이 다 거기서 거기

순간순간 흔들리며 사는 건 매한가지라고~


무심히 웃으며 달아나는 바람의 얼굴은

맑고 투명한 소용돌이을 닮았습니다

바람은 순간의 흔들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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