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517 울 엄마 꽃주머니에 담긴
둥근 달님 같은 사랑
가을 초입에서도 여전히
사나운 여름의 뒤끝이 길게 남아
기분 좋은 가을의 선선함 대신
태풍과 무더위가 오락가락입니다
비의 꽃이고 여름꽃인 수국이
속절없이 고운 빛을 잃고 여위어 말라가며
바스락 소리 한 점 차마 내지 못하고
지난여름의 끝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
한없이 애잔합니다
엄마의 주머니에도
빛바랜 수국 한 송이 담겨있는지
뜬금없이 부스럭 소리가 납니다
엄마 옷은 사시사철 꽃무늬라
주머니도 어김없는 꽃주머니인데요
추석이 한참 지난 후에도
여름 더위 지루하게 이어지듯
명절 뒤 온갖 감정의 뽀시래기와
가을맞이 주전부리들도
여기저기 뽀시락대며 남아 있어요
엄마가 수국 꽃잎처럼 바스락 소리 내며
꽃주머니에서 꺼내 살짜기 내미시는
둥근 달님을 닮은 달콤 약과 하나도
명절이 남기고 간 뽀시래기 하나인 셈이죠
엄마도 기억하시나 봅니다
어릴 적 내가 약과를 좋아해서
잔치 다녀오신 할머니의 조그만 주머니 속에
나를 위한 약과가 고이 들어 있었던 것을
여전히 기억하시나 봐요
달콤 표정으로 야금야금 약과를 먹던
어린 꼬맹이 딸을 기억하시는지
아니면 아직도 나를 꼬맹이
철부지 어린 딸이라 생각하시는지
꽃주머니에서 뜬금 약과 하나
부스럭 추억을 꺼내듯
살며시 꺼내 주시네요
엄마를 위해 한 잔의 바닐라라테와
그 곁에 앙증맞은 마들렌을 준비하고
나는 오늘의 커피 친구로
엄마의 꽃주머니에서 나온
약과를 나란히 놓으며
문득 생각합니다
엄마의 꽃주머니에 담겨 온 것은
약과보다 더 달콤한 사랑이고
둥근 달님 같은 사랑을 건네시는
울 엄마 눈에 나는 언제까지나
철부지 어린 딸인 거죠
커피처럼 씁쓸하고 약과처럼 달콤한
엄마와 딸의 간식 타임 배경음악은
언제나처럼 애수의 소야곡입니다
이제 더는 아버지의 구성진 목소리로
들을 수 없는 울 아부지 애창곡처럼
애수 어린 시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