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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Sep 21. 2022

초록의 시간 518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이미 가을입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이미 가을입니다


새파란 하늘에 몽글몽글 떠가는

하얀 구름도 이미 가을입니다

눈부시게 늘어지며 눈을 쪼아대는

햇살도 이미 가을입니다

바라볼수록 마음이 싸해지는

계절은 이미 가을입니다


장바구니 들고 시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면

참 좋겠다~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엄마의 장바구니에 담겨 있을

생선이나 푸성귀 반찬거리 속에

새빨간 홍옥 몇 알도 담겨 있으려니

새콤함이 입에 고이는 생각도 해 보고

뜻밖의 선물이나 과자봉지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소한 기다림으로

목을 길게 늘이고 귀를 쫑긋 세우며

엄마가 어디쯤 오시는지

발돋움을 해 보기도 합니다


엄마가 오랜만의 외출에서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돌아오시는

가벼운 발자국 소리도 상상도 해 보고

영화를 좋아하시던 엄마가

멋진 외국영화를 보고 돌아와

재미나게 이야기해 주실 거라는

기대도 해 보며 마음 설렙니다


엄마도 어린 나를

그렇게 기다려주셨을 테죠

비가 오면 우산을 챙겨 들고

바람이 불면 겉옷을 챙겨 들고

어린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면

문밖을 서성이며 기다리시던

엄마 마음에도 설렘과 기대가

잔잔히 고여 있었을까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어린 나를

기다리시던 그 시절 엄마도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며

계절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셨을까요


어릴 적 엄마의 기다림을 향해

어린 내가 달리고 또 달려왔듯이

보송 구름도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바람 같은 시간도 숨차게 흐르고

계절도 무수히 바뀌며 오가고

세월도 거침없이 달려온 길 끝에서

이제는 내가 엄마를 기다립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어릴 적 설렘과 기다림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요

지금 이 순간 기다림이 최선이고

지금 이렇게 기다릴 수 있음이 다행이라

고개 끄덕이며 웃는 내 마음은 이미

쌉싸름한 가을입니다

하늘은 높아지고 쓸쓸함은 깊어지는

지금은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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