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ring Sep 12. 2022

초록의 시간 515 명절 끄트머리에서

커피랑 과즐이랑

추석이 후다닥 지나고

오랜만에 만난 가까운 이들도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동그랗게 부풀어 차올랐던 보름달도

바람이 빠지듯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요


어릴 적에도 그랬었죠

설렘으로 기다리는 선물 같던 명절은

재미난 옛날이야기처럼 후딱 지나가고

신나게 북적대던 명절 끄트머리에는

다니러 온 친지들이 돌아가고 휑한 자리에

고요하고 적막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어요


명절 끄트머리의 쓸쓸한 그림자를 달래듯

엄마는 온갖 나물 넣어 비빔밥을 비벼 주셨죠

비빔밥으로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고 달래던

어린 마음에도 명절 끝의 고즈넉함은

해저물녘의 푸른빛으로

덥석 안겨들었어요


어른이 되어서는

명절을 기다리는 철없는 설렘 대신

어스름 닮은 쓸함이 미리 다가서고

명절 지나고 나면 남겨진 차례 음식처럼

부질없이 허전하고 휑하고 또 휑한 것이

아직도 철부지 어린 마음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게 되죠

커피 친구로 달콤 바삭한 약과나 과즐을

나란히 놓고 우두커니 바라봅니다

향긋하고 달콤하고 바삭한

약과나 감귤과즐 한 조각에 커피가

제법 잘 어울리거든요


과즐은 과줄의 옛말이랍니다

꿀과 기름을 섞은 밀가루 반죽을

판에 박아 모양을 내서 기름에 지진 과자인데요

속까지 깊은 갈색빛이 도는  강정이나

다식 약과 정과 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래요


프라이팬에 지지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꿀에 조리거나 하는

한과는 그 종류와 맛이 다양하고 다채로워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달달해져요


엿과 견과류로 만드는 강정은 달콤 고소하고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넣어 기름에 튀겨 

조청에 절여먹는 약과는 바삭하고 달콤해요

생과일이나 대추 도라지 등을 꿀에 넣어 조린 정과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어서  귀하죠


기름에 지져서 만드는 유과는

찹쌀과 조청으로 만들어 바삭 쫀득하고

조청이나 콩물에 고운 색을 섞어

다채로운 빛을 앙증맞은 다식도

한 잔에 곁들이면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허전한 명절 끄트머리

길게 늘어지는 푸른빛 그림자를 달래 보려고

과즐 한 조각을 커피 친구로 청해봅니다

국화차나 감잎차 같은

맑고 향기로운 차와 함께 해도 좋으나

그래도 커피와 함께 합니다

씁쓸함은 씁쓸함으로 달래야 하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초록의 시간 514 가을꽃길 걸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