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526 바람에 기대어
바람의 손을 잡고
가녀린 바람 같은 내게
바람보다 더 가냘픈 엄마가
손을 내미십니다
나를 붙잡고
살며시 내게 기대어 오십니다
어릴 땐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며 기대고
마음에 맺힌 게 있을 때마다
맘 놓고 엄마를 향해 실컷 풀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며
가만히 기다려 주셨어요
그때는 별말씀 건네지 않는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주시는 것 같아서
맘에 안 들고 야속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물처럼 흐르다 보니
엄마도 그때 어찌할 바를 모르셨던 거고
그래서 그냥 기다려 주셨다는 걸
이제 알 것 같아요
문득 어느 친구의 말이 생각납니다
울 엄마는~
누군가 엄마 얘기를 할 때만
살짜기 내게 오신다는
그 말이 참 뭉클했어요
지금은 엄마가 가까이 계시지만
언젠가는 울 엄마도 내 곁에서 멀어지시겠죠
그 언젠가 엄마가 보고싶어지면
바람에게 손을 내밀 것 같아요
가을이라고 나풀대다가
헝클어지듯이 마구 불어대는
차가운 오늘의 바람결에
미리 마음을 기대어 볼까요?
어딘가 기댈 곳이 있었으면 싶을 때
둘러보아도 마땅히
마음을 기댈 만한 곳이 없을 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기대어 볼래요
다 버리고 다 비우고
바람보다 더 가벼워지면
지나가는 바람의 손을 잡고
바람에게 기댈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