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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Oct 10. 2022

초록의 시간 526 바람에 기대어

바람의 손을 잡고

가녀린 바람 같은 내게

바람보다 더 가냘픈 엄마가

손을 내미십니다

나를 붙잡

살며시 내게 기대어 오십니다


어릴 땐 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며 기대고

마음에 맺힌 게 있을 때마다

맘 놓고 엄마를 향해 실컷 풀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며

가만히 기다려 주셨어요


그때는 별말씀 건네지 않는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주시는 것 같아서

맘에 안 들고 야속하기도 했는데

시간이 물처럼 흐르다 보니

엄마도 그때 어찌할 바를 모르셨던 거고

그래서 그냥 기다려 주셨다는 걸

이제 알 것 같아요


문득 어느 친구의 말이 생각납니다

울 엄마는~

누군가 엄마 얘기를 할 때만

살짜기 내게 오신다는

그 말이 참 뭉클했어요


지금은 엄마가 가까이 계시지만

언젠가는 엄마도 내 곁에서 멀어지시겠죠

그 언젠가 엄마가 보고싶어지면

바람에게 손을 내밀 것 같아요


가을이라고 나풀대다가

헝클어지듯이 마구 불어대는

차가운 오늘의 바람결에

미리 마음을 기대어 볼까요?


어딘가 기댈 곳이 있었으면 싶을  때

둘러보아도 마땅히

마음을 기댈 만한 곳이 없을 때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기대어 볼래요


다 버리고 다 비우고

바람보다 더 가벼워지면

지나가는 바람의 손을 잡고

바람에게 기댈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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