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527 가을 수국이 전하는 말
변해야 산답니다
갑자기 파르르 추워진 아침
성급하게 패딩을 꺼내 입었다가도
밝아오는 햇살이 환한 미소로
따사롭게 어깨에 내려앉으면
아무 생각 없이 중얼거리며
그냥 웃습니다
가을볕이 밝고 환하고
따스해서 침 좋다~고 중얼거리며 걷다가
바스락 말라가는 가을 수국 앞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지난여름
장마와 함께 찾아온 나무수국 꽃이
말갛게 희고 고운 얼굴이더니
가을이 차갑게 영글어갈수록
얼굴빛이 푸스스 달라집니다
연두인 듯 분홍인 듯
두 빛이 아롱지며 섞인 듯
연두와 분홍이 서로에게 스며든 듯
애잔하게 시들어가며
햇살에 빛이 바래고
바람에 시달린 얼굴이 짠합니다
변함이 없다는 건
한결같다는 것인데요
얼굴빛을 바꾼 수국 꽃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결같음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한 송이 수국 꽃이 살아남기 위해
가짜 꽃을 내 세우고 얼굴색을 바꾸듯이
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힐 줄도 알아야 하는 거죠
한걸음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하는 거죠
단순 변심이 아니라 살기 위해
변하는 게 아니라 바꾸는 것이죠
계절도 바뀌며 흐르고
사람의 마음도 흘러가며 달라지고
그리하여 사랑도 머뭇머뭇
변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요
변해야 내 마음이 살 수 있다면
변해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다면
살기 위해 변할 수밖에 없고
사랑하기 위해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그 또한 이해하고 용서해야 하는 것임을
가을 수국에게서 배웁니다
빛이 바랜 듯 변하고
푸스스 물이 빠져 메말라도
살아있으니 고운 거라고
마음으로 어루만지며
또 중얼거립니다
살기 위해 변하는 거라면
괜찮아~변하고 또 달라지면
또 어떠리~살아내기 위해서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