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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23. 2022

초록의 시간 528 어느 날 문득

그대와 커피 한 잔

우체국 앞에서

단풍잎처럼 빨간 옷을 입은

공중전화부스를 만납니다

햇살이 머무르는 빨강이 예뻐서

깊어가는 가을빛 닮은 고운 빨강이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대를 생각합니다


가을이 가기 전에

그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어느 날 문득

주머니에 들어 있는 휴대전화 대신

빨강 옷 입은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가

잘 지내느냐고~그대에게 가만가만

목소리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어느 날 문득

짤막하게 줄여 얍삽해진 문자 대신

흰 종이에 또박또박 예쁜 연필 글씨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사연을 담고 싶습니다

하고픈 말이 많아 도무지 줄여지지 앓아서

이야기들이 머뭇머뭇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정리되지 않아 조금은 길고 어설픈

안부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울지 않으려고 애써 웃고 있진 않니

세상을 다 짊어진 듯 어깨가 무겁진 않니

힘겹게 버티느라 종아리가 아프진 않니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막막하고 거듭 막막한 마음 끌어안고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는 건 아니니

모눈종이에 갇힌 듯 갑갑하고 또 갑갑해서

혼자 몰래 긴 한숨을 쉬고 있지 않니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바람으로 채우고 싶어

가슴 한복판을 후비며 구멍을 내고 있지는 않니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그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어느 날 문득 만나서 얼굴 보자고

번잡한 사연 살짝 감춘 문자 안부도 좋고

예쁘장하게 다듬은 가을 사진 안부도 좋지만

세월에 밀려 적당히 지치고

인생에 휘둘려 고단함으로 얼룩져 

아무것도 아닌 듯 보잘것없을지라도

여전히 저마다 인생의 주인공인 우리

서로의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며

눈인사 나누며 울다 웃다 그러다 묵묵히

서로의 지친 어깨를 다독여주자고~


이 예쁜 가을이 가기 전에

작고 보잘것없으나

그래서 더 귀한 걸음으로

은행잎 날리는 가을길 사뿐 밟아

가을 햇살 반짝 머무르는 얼굴 마주 보며

그대와 나 멋진 가을 영화의 주인공인 듯

활짝 웃으며 가을 커피 한 잔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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