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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28. 2022

초록의 시간 529 가을의 뚜껑이 닫힐 무렵

일본 영화 '바다의 뚜껑'

병뚜껑도 아니고

'바다의 뚜껑'이랍니다

여름이 끝나도 닫히지 않고

열린 채 출렁이는 바다인 걸까요?


그러고 보니

우리들의 이 가을도

이제 그만 뚜껑을 닫으려나 봅니다

겨울을 재촉하는 빗방울도 스치고

차가운 느낌이 와락 옷깃을 파고들어요


가을의 뚜껑이 사르르 닫힐 무렵

영화 '바다의 뚜껑'을 봅니다

뚜껑이 열린 바다가 배경이지만

파도소리처럼 소란스럽지 않고

강물과도 같은 잔잔한 흐름을 따라

금빛 햇살이 반짝이며 빛나는 영화

'바다의 뚜껑'은 제목이 재미납니다


빙수를 좋아하는 마리는

바닷가 창고를 빌려

빙수가게를 열기로 합니다


어느 섬의 빙수가게 아주머니에게

'그렇게 서두르지 말고

해변을 한 바퀴 돌아보라'는 말을 듣고

그녀는 바닷가 고향 마을로 돌아와

조그만 빙수가게를 차리는데요


무대 설치를 전공한 그녀는

혼자서 주문 자세 연습도 해보

서거나 앉아도 보며 실내를 꾸며나갑니다

마리의 빙수가게 메뉴는 달랑 두 개

당밀 맛 빙수와 귤 맛 빙수

둘 다 그녀가 좋아하는 빙수죠


엄마 친구 딸 하지메가 

그녀의 집에 머무르게 되고

슬픈 사연을 안고 그녀 곁에 함께 합니다

예쁜 얼굴에 안타깝게도 화상 얼룩이 있고

불꽃 속에서 자신을 감싸주시던

할머니를 여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어요


'발작처럼 눈물이 난다'며

하지메는 커피콩을 갈다 말고 울어요

'슬픔이 와락 밀려왔다가 사라지는데

슬픔을 참을 순 없어도 울고 나면

후련해진다'는 하지메의 중얼거림 끝

뾰족한 아픔이 부서집니다


마리와 하지메가 함께 바다와 마주 서서

파도를 향해 '바다의 뚜껑'을 노래합니다

'여름의 끝자락 바다에서 헤엄을 치다가

마지막 나온 사람이 바다의 뚜껑을

닫지도 않고 가 버리고 그 이후

바다의 뚜껑이 열린 채로 있다' 

노랫말이 철 지난 바다처럼 쓸쓸합니다


당밀 맛과 귤 맛 빙수를 파는

마리의 조그만 빙수가게에 놓인

오래된 빙수기계가 반갑고 신기하지만

귀여운 멍멍이랑 함께 들어가도 되는

정겨운 가게에는 한참 동안 손님이 없어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마리와 하지메

두 사람 곁으로 파도소리와 바닷바람만

무심히 스치고 지나갑니다


얼음 듬뿍 갈아 당밀 맛 빙수를 만들어

마리가 하지메에게 먹어보라고 건네자

마리네 빙수가게의 첫 손님 되고 싶다며 

하지메는 빙수 값을 내밉니다

처음 먹어보는데 맛있다며

그리운 맛이 난다고 중얼거려요

그렇게 두 사림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는

친구기 되어갑니다


그녀가 도쿄로 대학 공부를 하러 갈 때

고향에 남아 열심히 일을 했으나

돈에 밀려 돈  때문에 도망치듯 달아나는

남자 친구 오사무를 향해

다시 돌아오라고 마리는 외칩니다

자신은 취미로 빙수가게를 하는 게 아니라

빙수가게를 하며 바다 마을에서 살아간다고

바닷가로 달려가 우는 마리와

뒤따라가 말없이 안아주며 함께 우는

하지메는 서로의 아픔을 헤아리며

다독이는 진심 친구입니다


마리가 그려서 버린 인형 그림을 주워 모아

하지메는 봉제인형으로 만들어 팔고 싶다며

그 애들의 세상을 알 것 같다고 하죠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이

여자애들에게 주는 인형이 있다는 건데요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 곁에 있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며 슬프고 아픈 일들은

다 가져간다는 봉제인형을 만들어

외로운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됩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건 좋아하지만

수영을 하지 못해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던 하지메는 한 걸음 바다를 향해 다가섭니다

'조금씩 익숙해지면 나중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용기를 내 바닷물에 몸을 맡기며

하지메는 생각합니다

바다의 뚜껑을 닫는다는 게

이런 느낌일 거라고~


꿈을 찾은 하지메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고

마리는 딸기맛 빙수를 메뉴에 추가합니다

빨간 맛 빙수가 없다고 울먹이던 소녀가

마리의 딸기맛 빙수를 맛나게 먹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웃음을 머금게 하고

바다를 바라보는 마리의 얼굴에도

기쁨의 빛이 반짝입니다


이제 곧 우리 곁을 떠나는

가을의 뚜껑을 잘 여미어 닫고

우리는 어디를 향해 떠나야 할까요?

어디론가 떠날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꿈을 찾아야겠죠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떠나는 첫걸음은

설렘으로 일렁이고

기쁨으로 반짝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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