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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Oct 07. 2022

초록의 시간 525 해피 가을 메리 커피

해피 모닝 메리 커피

전에는 커피를 탄다고 했었죠

커피와 크림과 설탕을 사이좋게

취향대로 타서 앙증맞은 티스푼으로

휘리릭 잘 저어서 마셨어요


내 커피의 간단 역사는

큼직한 머그잔에 커피를 타다가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리다가

핸드드립도 좀 해 보다가

간편 드립백 커피로 바꾸다가

이제는 사뿐사뿐 걸어서

테이크아웃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


한때는 거품기로 우유 거품을 내서

서툰 라떼아트를 해보기도 했으나

이제는 우유가 맛있는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사서 마십니다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카페라떼에서

멋들어진 하트를 만날 순 없어요

우유 거품 퐁퐁 뽀그르르이거나

약간 찌그러진 하트이거나

너부데데 퍼진 동그라미이거나

깜찍 소심 하트이거나~


아메리카노 한 잔이

카페라떼를 사 온 후에도

종이컵째 마시지 않고

머그잔에 옮겨 마십니다

그 정도 수고는 해주어야

커피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가끔은 카페라떼로 장난을 하기도 해요

머그잔에 부으며 우유 거품으로

몽그르르 하트를 그려봅니다

그리다 보니 하트가 뭉그러졌어요


모양이나 형태가 변하도록

문질러 짓이기는 것을 뭉갠다고 하는데

어떤 생각을 애써 지워버린다는 뜻도 있고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자리에서 미적거린다는 의미도 있으니

가을날 커피 한 잔에 떠 있는 하트를

뭉개는 놀이도 그 나름 재미납니다

울적하고 소란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살짝 뭉개듯 지워버릴 수 있으니까요


뭉게구름처럼 뭉그러져도

어쨌거나 하트는 하트

애쓰거나 말거나 제멋대로

애쓰면 애쓸수록 더 뭉개지는 

인생도 인생은 인생


카페라떼 한 잔을 뭉개다 보면

아파트 앞마당에 툭 떨어져

부질없이 뭉개진 주홍빛 감도 떠오르고

어릴 적 울 동네 이웃집에 살던

해피라는 강아지도 문득 생각나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친해진

영어책 속 메리라는 이름의

귀여운 소녀생각납니다


가만 들여다보니 뭉개진 하트 위로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떠오르는 듯해서

인생이란 덧없는 구름이라 중얼거리다가

그래도 해피 가을 메리 커피라고

혼자 실없이 웃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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