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524 가을을 탑니다
나풀나풀 가을 그네
몇 년만인가요
초등학교 교문에 가을운동회
귀여운 플래카드가 걸려 팔랑대고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나풀댑니다
요즘 운동회 모습은 어떨까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걸린 만국기처럼
내 마음도 설렘으로 나부낍니다
그런데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운동장에 그네가 보이지 않아요
어릴 적 유난히 소심한 겁쟁이여서
덥석 그넷줄을 잡지도 못하고 머뭇머뭇
하늘에라도 닿을 듯 신나게 그네 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했었죠
선 채로 그넷줄을 잡고 바람을 가르며
그네를 멋지게 잘 타던 친구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넌지시 물어봤어요
어떻게 타면 너처럼 잘 탈 수 있을까?
조심스러운 내 질문에 대한
친구의 대답은 간단명료했어요
나처럼 타면 돼~라며 웃던
친구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쭈볏대며 묻는 나도
웃으며 대답해준 친구도
작고 어리고 철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우문현답입니다
그 친구처럼 타면 되는 게 정답인데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게 참 어려웠어요
그네에 올라가면 와락 겁이 나서
두 발로 균형을 잡고 버티며 서지도 못하고
바짝 얼어 앉은 채로 두 다리만 대롱대롱
우물쭈물 제대로 리듬을 타지 못하고
잠시 하늘 멀미를 하며 기우뚱거리다가
그만 내려오곤 했었죠
나중에 그네 타는 법을
글로 배웠는데요
그넷줄을 잡고 서서
오락가락 그네를 탈 때는
무게 중심이 앞뒤로 이동하면서
움직이는 힘을 얻는 거라는군요
앉아서 그네를 탈 때는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오고 가는 힘을 얻게 되기 때문에
앉아서 타는 것보다는
서서 타는 게 더 잘 탈 수 있답니다
그런데요
글로 배운 것과 상관없이
그네는 겁이 많아 여전히 망설이고
인생의 그네도 늘 서툴기만 해
제대로 타지 못하면서
유난히 가을은 잘 탑니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하늘 멀미도 하지 않고
앉으나 서나 덥석
가을을 탑니다
나풀나풀 나비처럼 나풀대며
배운 적도 없고 연습 한 번 하지 않은
가을 그네를 싱숭생숭
타고난 듯 익숙하게 잘도 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