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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Oct 06. 2022

초록의 시간 524 가을을 탑니다

나풀나풀 가을 그네

몇 년만인가요

초등학교 교문에 가을운동회

귀여운 플래카드가 걸려 팔랑대고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나풀댑니다


요즘 운동회 모습은 어떨까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걸린 만국기처럼

내 마음도 설렘으로 나부낍니다


그런데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운동장에 그네가 보이지 않아요

어릴 적 유난히 소심한 겁쟁이여서

덥석 그넷줄을 잡지도 못하고 머뭇머뭇

하늘에라도 닿을 듯 신나게 그네 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부러워했었죠


선 채로 그넷줄을 잡고 바람을 가르며

그네를 멋지게 잘 타던 친구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넌지시 물어봤어요

어떻게 타면 너처럼 잘 탈 수 있을까?


조심스러운 내 질문에 대한

친구의 대답은 간단명료했어요

나처럼 타면 돼~라며 웃던

친구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쭈볏대며 묻는 나도 

웃으며 대답해준 친구도

작고 어리고 철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우문현답입니다

그 친구처럼 타면 되는 게 정답인데

안타깝게도 내게는 그게 참 어려웠어요


그네에 올라가면 와락 겁이 나서

두 발로 균형을 잡고 버티며 서지도 못하고

바짝 얼어 앉은 채로 두 다리만 대롱대롱

우물쭈물 제대로 리듬을 타지 못하고

잠시 하늘 멀미를 하며 기우뚱거리다가

그만 내려오곤 했었죠


나중에 그네 타는 법을

글로 배웠는데요

그넷줄을 잡고 서서

오락가락 그네를 탈 때는

무게 중심이 앞뒤로 이동하면서

움직이는 힘을 얻는 거라는군요


앉아서 그네를 탈 때는

몸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오고 가힘을 얻게 되기 때문에

앉아서 타는 것보다는

서서 타는 게 더 잘 탈 수 있답니다


그런데요

글로 배운 것과 상관없이

그네는 겁이 많아 여전히 망설이고

인생의 그네도  서툴기만 

제대로 타지 못하면서

유난히 가을은 잘 탑니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하늘 멀미도 하지 않고

앉으나 서나 덥석

가을을 탑니다


나풀나풀 나비처럼 나풀대며

배운 적도 없고 연습 한 번 하지 않은 

가을 그네를 싱숭생숭

타고난 듯 익숙하게 잘도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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