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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Feb 01. 2023

초록의 시간 546 오는 봄에게

무던한 봄이기를

立春이랍니다

저만치서 봄기운이 꼼지락대다가

금방 봄이 온답니다


매운바람의 끄트머리에서

어디선가 새봄이 새순처럼 돋아나고

어느 틈에선가 고운 봄이 추위를 비집고

새싹처럼 포르르 솟아날 거라

2월의 문이 열리자마자

봄바람 살랑살랑 불어오기도 전에

미리 봄의 시작알려주는

立春이 곧이랍니다


이번 봄은 토끼처럼

붉은 눈망울 지혜롭게 반짝이며

기다란 귀를 야무지게 팔락이면서

깡총걸음으로 뛰어올까요


24 절기의 하나인 입춘은

대한과 우수 사이에 있는데

대개는 2월 4일 무렵이래요


이때부터 봄이 시작된다고 해서

좋은 운과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벽이나 문이나 기둥에 떠억하니

입춘대길(立春大吉)이나

건양다경(建陽多慶)

반갑게 봄을 맞이하는 글귀를 써서 붙이는데

이를 입춘방(立春榜) 입춘첩(立春帖)

춘첩자(春帖子)라고 한답니다


내 마음의 창문에도

봄을 기다리는 입춘방을 붙인다면

무던한 봄이라고 써 붙이고 싶어요

봄아 너무 애쓰지 마~라고

덧붙이고 싶어요


저만치서 오는 봄아

너무 애쓰지 마 빨리 오려고

종종걸음으로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느 때보다 예쁜 꽃을 피우려고

너무 애쓰지도 마


오는 봄아 오더라도

눈부시게 화사한 봄이 아니어도 괜찮아

찬란하게 반짝이는 봄일수록 슬프고

고운 빛으로 영글수록 시들  아쉬우니

다만 티 없이 해맑은 연둣빛으로 오면 


오는 봄아 오더라도

너무 많이 애쓰지 말고

오는 듯 마는 듯 가만가만

무던한 걸음으로 오렴


무던하다는 말은

애틋하게 사랑스럽다거나

산뜻하다거나 말쑥한 느낌도 아니고

치명적인 매력을 담고 있지 않으나

눈에 띄게 특별하지 않은 만큼

오히려 편하고 정답고 미더우니까요


이번 봄은

까다롭거나 유난스럽지 않고

순하고 무던한 봄이었으면 해요

나에게 오는 봄이

솜털처럼 부드럽고 순하고

너그럽고 수더분한 봄이었으면 합니다

보석 알갱이처럼 반짝 빛나지 않아도

어떻게 오든 봄은 봄이니까요


첫사랑의 설렘이나

톡톡 튀는 알싸한 매력 대신

오랜 친구의 편안함과

잔잔히 여유로운 평온함으로 오는

무던한 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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