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고 하는데
바람이 운다~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살아가듯이
바람도 다르게 불어오고
다른 목소리로 울 것 같아요
우리가 같은 곳을 향해
나란히 걷더라도
걸음걸이가 다르고 보폭도 다르고
바라보는 시선 또한 같지 않고
마음이 향하는 곳 역시 다르며
걸어가는 발자국의 깊이
저마다 서로 다르듯이~
바람의 노래라고 하는데
바람의 하소연 같아요
바람이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어
이리저리 혼자 마구 나댕기고
어느 누구에게도 손 내밀거나
마음 기대지 못하고
혼자 제멋대로 쏘댕기며
울다 웃다 하는 것 같아요
우리의 걸음도 그렇잖아요
기쁨으로 마구 뛰어갈 때도 있고
슬픔으로 가라앉는 묵직한 걸음도 있고
이리저리 헤매며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어디로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
머뭇거리는 제자리걸음도 있으니까요
철부지 어릴 적 동화 속에는
창백한 얼굴에 긴 머리 소녀가
휠체어를 탄 채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이 있었어요
땅을 딛고 또박또박 걷지 못하는 대신
마음만은 바람 따라 훨훨 날아다니는
슬프고도 아름답고 고요한 풍경 하나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는데
그 동화의 제목이 무엇이었는지는
안타깝게도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소녀의 이름도 떠오르지 않고
줄거리와 결밀도 다 잊고 말았지만
우두커니 창밖을 내다보는
소녀의 애잔한 표정과 눈망울은
유난히도 기억 속에 선명한데
지금 내 눈앞에는
이름 모를 그 소녀 대신
애잔한 소녀의 눈망울 닮으신
울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계십니다
내 눈앞의 현실이 과연 실화일까요
이게 실화냐~ 중얼거리다가
나 어릴 적 정말 그런 동화가 있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휠체어에 앉으신 엄마를 바라보니
엄마가 바로 그 소녀 같기도 해요
얼굴이 창백한 긴 머리 소녀가 아닌
얼굴이 희고 머리카락도 하얀
짧은 커트머리 울 엄마가
바람의 미소를 머금고 계십니다
엄마는 동화 속 소녀처럼
두 발로 또박또박 걷지 못하고
휠체어에 앉아 제시지만
마음만은 지금 당장이라도
동화 속 긴 머리 소녀처럼
바람이 되어 나풀나풀
온 세상을 날아다니실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어요
엄마의 걸음은
바람의 걸음이라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고
엄마의 잔잔한 미소는
바람의 선물이라고 믿고 싶어요
바람이 상냥하게 손잡아주고
바람이 앞장서서 이끌어주고
바람이 휠체어 바퀴를 동글동글
조심스레 밀어주며
세상 어디를 가든
다정히 함께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