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552 잃고 잊어가며
비로소 알아가는
이미 잃어버린 건
사람이든 물건이든 생각이든
잊어버려야 한답니다
잃고 잊어가며 사는 게
우리들 삶이고 인생인 거죠
잃은 후에야 비로소 알아가는 삶이
때로 무심한 듯 가혹하지만
잃고 난 후에도 여전히 모르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얼마 전에 동생이
아끼는 손목시계를 그만 잃어버렸다며
몹시 아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쉽고 아까운 건 시계가 아니라
시계를 들여다보며 정한 약속들과
약속의 시간을 함께 한 사람들과
지나온 시간의 마디마디에
묵묵히 스민 세월의 정이 애틋한 거죠
동그란 시계 속 시간의 발걸음 따라
기쁘고 설렜던 순간들과
슬프고 아팠던 순간들 그리고
시계바늘의 움직임과 함께
또박또박 걸어온 지난날들이 떠올라
다정한 친구 한 사람 읺은 듯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테죠
그래도 잃어버린 게 시간이 아닌
시계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동생에게 말했어요
잃어버린 건 그만 잊으라~고요
시계에 쌓이고 담긴 세월의 정도
그 세월과 손잡은 희로애락까지도
너무 오래 마음에 두지는 말라~고요
고소한 우유거품으로 만들어진
찻잔 속 고운 잎 하나도
잠시잠깐 즐거움을 건네다가
마시는 동안 줄어들고 찌그러져
동화 속 인어공주도 아닌데
뽀그르르거품만 남게 되듯이
이미 있었으니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 따위에 파르르
잎 하나처럼 흔들리지 말아야죠
아쉽고 안타까울지라도
어쩔 수 없이 잃고 잊어가며
비로소 알아가는 것이
우리들 삶이고 인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