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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Feb 27. 2023

초록의 시간 553 마음은 이미 봄

창밖은 봄

겨우내 게으름 피우며

미적미적 벼르고 벼르다가

머리를 짧게 잘랐습니다

머리 자르는 게 뭐 그리 별거라고

봄맞이라는 이름 거하게 붙이는 내가

거울 속에서 문득 낯설어요

그리고 웃퍼요


봄을 안고 오는 햇살

따사롭고 눈부셔 창문 열고 내려다보니

저 아래 초등학교 교문 옆

느티나무도 시원하게 이발을 했어요

나무 주변에 수북이 쌓인 잔 가지들이

나무의 머리카락인 듯

그림자 대신 무성합니다


느티나무의 봄맞이를 위해

나뭇가지들이 그동안 정든 나무와

소리도 없이 이별을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한참을 내려다봅니다

겨우내 불어오는 시린 찬바람

피하지 않고 당당히 머금으며

눈송이까 매달아가며 버티고 견디던 힘으로

나무와의 이별도 잔잔히 맞이하겠죠


따사로운 봄햇살 맞으며

나무와 이별한 나뭇가지들과 눈인사 나누느라

손에 든 카페라떼를 잠시 잊었습니다

어설프지만 하트가 그려져 있었는데

창밖 풍경에 마음이 쏠린 사이에

보드라운 우유거품이 뽀그르르 사그라들고

커피는 미지근하게 식어버렸어요


그럼요 거품은 사라지고

따스함은 서서히 식기 마련이죠

그러나 사라진다고 해서

기억 속에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뜨겁거나 차갑지 않아도 괜찮아

미적지근하면 또 어때

산뜻하거나 분명하거나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흐릿하면 또 어때

겹겹이 고운 하트가 아니면 어때

실패해서 뭉그러진 하트가

 한 송이 목련꽃으로 피어났으니

찻잔 속은 이미 봄~


그런데요

머리 짧게 자르고

모자까지 벗어던진 내가

낯설어 보이는지 한참을 쳐다보시는

엄마의 주름진 눈가에도

설포시 봄햇살이 깃들어 있어요


창밖은 봄

매서운 꽃샘추위가 기다리고 있어도

우리 모두의 마음은

이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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