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가의 풀포기들이
누런 잎을 납작하게 수그리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느릿느릿
연하디 연한 연둣빛을 내뿜고 있어요
봄이 안고 오는 빛은
빛이 아니라 소리 같아요
봄이 건네는 소리는
소리가 아니라 눈물 같아요
봄날의 빛과 소리는
노래가 아니라 소리 없는
울음 같아요
양지바른 곳에서
수줍은 안부와도 같은
산수유꽃망울 잔잔히 맺히면
노랑 미소 닮은 나리 나리 개나리꽃
담장을 타고 피어오르고
꽃길 걷자고 백매화 홍매화가
아른아른 사랑스러운 손짓을 하며
아씨 걸음으로 다가오는데
조금씩 키가 자란 햇살 덕분에
저녁 어스름이 서두르며 내려오다 말고
머뭇머뭇 멈칫댑니다
하루가 달아나는 모습이 아쉽고
귀해서 아깝고 안타깝다는 듯이
봄날의 어둠은 더디게 내려옵니다
어둠이 머뭇거리며 늑장을 부리는데도
봄날의 하루는 여린 꽃인 듯
금방 시들어요
봄이라고 쓰고
꽃이라 읽을까요
연두라고 쓰고
봄날이라 읽을까요
봄이 슬픈 것은
꽃다운 나이라서~라고
중얼거립니다
봄이 아픈 것은
여리고 꽃다운 나이일수록 유난스럽게
온갖 생각이 많아져서~라고
혼자 또 중얼댑니다
도란도란 피어나는
꽃잎들의 수만큼이나 소란한
생각의 꽃들이 저마다 손 흔들며
그리움 안고 피어나서~라고
부질없이 또 중얼거려 봅니다
봄은 꽃이라서
봄날은 연둣빛이라서
고운 걸음으로 왔다가
지는 꽃처럼 저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