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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Mar 25. 2023

초록의 시간 558 그래도 피어나는

봄날의 강인함

가지를 거침없이 뚝뚝 쳐내서

마음이 찢기고 손발이 잘리고도

그래도 때가 되면 피어나는 것이

꽃이고 봄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아프게 잘린 가지 끝에서

야무지게 제 몫을 다하며 피어난

새하얀 매화를 보며 배웁니다


볼 때마다 궁금했어요

지난여름 어느 날 문득

몽실언니처럼 싹둑 머리를 자른

매화나무에서도 다음 해 봄이 오면

봄기운이 차오르고 새 순이 꼬물대며

고운 꽃 피고 초록 잎 돋아나는지~


그런데 어김없이 꽃이 피었어요

하늘거리는 섬세한 줄기 아니라도

야리야리 곱디고운 손끝 대신

뭉툭한 가지 사이에서 무심히  피어나

잠시잠깐 머무르는 매화 꽃송이가 

당당하게 아름다워서 참 다행이고

나긋나긋하지 않은 만큼 씩씩해서 

오히려 사랑스럽습니다


꽃이라고 해서 수줍거나

마냥 곱기만 할 필요는 없는 거죠

봄이라고 해서 달콤하게 낭만적인

예쁜 분홍으로 나부껴야 할 필요도

물론 없는 거고요


꽃다운 봄날의 매화라고 해서

투사가 되지 말란 법도 없죠

봄날의 나긋한 설렘 대신

봄날의 강인함도 때로는

벅찬 생명의 힘으로 다가와

반갑고 고마워서 위로가 되니까요


가지가 잘리는 아픔을 겪고 견디며

의연히 피어난 매화를 보며

새롭게 봄을 배웁니다

봄은 순하고 연해 보여도

생명을 품어 강인한 계절임을~


한 송이 꽃도

그루 나무 같은 사랑도

한  줄기 강물처럼 흐르는 인생도

아무런 이유 없이 피어나서

자라고 흐르는 사라지는

분명 아닐 테죠

한 포기 꽃과 사랑과 인생도

꿈틀대는 봄날과도 같은

귀한 생명이니까요


꽃도 사랑도 인생도

제 몸과 살이기도 가지들을

거침없이 쳐낸 아픈 자리에서

아픔을 견디면서 또다시 피어나고

픔을 어안고 부대끼며 자라고

깊은 상처의 기억과 함께 머무르다가

그 또한 훌훌 미련 두지 않고

가지 치듯 떨쳐내며

묵묵히 흐르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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