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26 늦잠도 쉽지 않은
늦잠은 아무나 자나
변덕쟁이 눈비소식 기다리고 있노라~
친절한 날씨요정의 알림이 이어지며
나른하게 늘어지는 늦가을 아침이
회색빛으로 흐리고 뿌옇습니다
잠을 설쳐 날씨처럼 개운하지 않으나
느긋하게 여유라도 부려보고 싶어
진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에스프레소 한 잔에
쫀득한 캐러멜이 들어가고
소금알갱이 톡톡 흐트러진
달콤 짭조름한 초콜릿을 곁들입니다
반짝이는 소금 알갱이를 보니
잠시 소금이 귀해지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유행처럼
번지다 만 작은 소동이 생각납니다
그때 철없이 떠오른 건
좋아하는 소금빵이 먼저였는데요
예나 지금이나 소금의 짠맛은
모든 맛의 기본이니
변함없이 귀한 것이죠
커피와 초콜릿 앞에 두고 있으니
어느 영화 대사가 떠오릅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야
어떤 걸 가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
포레스트 검프의 엄마가 하신 말씀이죠
거기에 이렇게 덧붙이고 싶어요
인생은 초콜릿 상자 하나 옆에 끼고
타박타박 무작정 떠도는 여행이야
어느 초콜릿을 맛보게 될지 알 수 없고
초콜릿 상자가 텅 비어 있을 수도 있으니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게 인생인 거야
인생에는 도돌이표도 없고
왕복여행이 아니라 편도일 뿐이고
속도 제한도 없고
게다가 과속방지턱도 없고
더구나 한결같은 일방통행이라서
때로 안타깝고 막막하지
그 모든 걸 하나하나
늦잠이 쉽지 않은 나이에
비로소 어설프게 알아가는 것이
다행일까~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렇지~ 고개 끄덕이며
친구가 맞장구를 쳐줍니다
늦잠도 다 때가 있어서
마음이 제아무리 철부지라도
잠은 이미 어른잠이거든
뭐 그리 부지런하지도 않으면서
아침 일찍 눈이 떠지고
일찍 일어난 만큼 일찍 자야 하는데
그렇진 않으니 대략 난감이라는
친구의 말에 공감합니다
늦잠 쉽지 않아
어릴 땐 늦잠이 쉬웠는데
어릴 땐 쉬운 일들이
지금은 하나도 쉽지 않아
그 거이 인생~
친구와 마주 보며 웃고 맙니다
하루가 고단할수록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길고도 짧은 하루
잠깐 낮잠으로 달래 보지만
밝은 대낮의 낮잠은
어설프고 어중간한 잠이라
한없이 여유롭게 늘어지는
늦가을 오후가 더 나른하기만 해요
되돌아설 수도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인생
초콜릿 맛 내 맘대로 고를 수 없는
허무한 상자 하나 들고 머뭇거리는 사이
늦가을 해는 한 뼘이나 더 짧아지고
지는 해는 더 허무하게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