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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24. 2023

초록의 시간 627 소리도 없이 자라는

커피나무야 미안해

무엇이 그리도 분주했던 걸까요

우리 집 커피나무 어린싹들이

보송한 콩모자를 시원하게 벗어던지고

싱그러운 초록잎들을 나풀대는

기특하고도 사랑스러운 모습을

이제야 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바쁘긴 했었나 봅니다

그립고 보고픈 친구도

제때 제대로 만나지 옷하고

환자에서 보호자가 되어

병원 나들이에 나서기 시작한

나를 만나러 친구가 고맙게도

그 시간에 맞춰 주었어요


병원으로 찾아와

어설픈 보호자 노릇을 하는 내게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고

보호자의 보호자가 되어 준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

묵묵히 손 내미는 큰언니 같았죠


만난다는 건

손을 잡는다는 거와 같아요

손을 놓는다는 건 

뒷모습 보이며 돌아선다는 거고

손을 뿌리친다는 건 이미 헤어졌다는

단호한 마음의 표시일 테니까요


이도 저도 아닌 관계로

어중간하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과

더 자주 소식 전하며 만나야 할까

이쯤에서 슬며시 손을 놓아야 할까

가끔은 그런 마음이 들어서

적당히 손을 놓아도 되는

얼굴들을 가만가만 헤아려봅니다


그런데요

반듯하고 그럴듯한 소식이나

반반하고 멋들어진 모습 전할 만한

처지나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제 와 손을 놓기에는 아깝습니다


서로에게 반갑게 건네는 인사가

비록 자주는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전하는 소식이

늘 기쁘고 즐거운 소식이 아니더라도

그래도 계절 인사쯤은 나누는 사이로

서로의 마음 근처를 서성이며

울퉁불퉁 인생길을 함께 하고 싶은

정다운 얼굴들이거든


꼭 좋은 소식이 아니면 어때요

내 삶이 쭈굴거리고 찌질해 보일지라도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고 안부 전하며

잡은 손 놓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거죠


마음 울적할 때 문득 그립고

지치고 버거울 때 

다정한 위로의 미소 지으며

떠오르는 따스한 인연의 얼굴들을

이제 와 새삼스럽게 다시 찾아

새로이 만들어가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담대하지 못하더라도 담담하게

유쾌하지 못하더라도 유연하게

당당하지 못하더라도 담백하게

의젓하지 못하더라도 의연하게


소리도 없이 제 몫을 하며 자라는

우리 집 애기 커피나무처럼

사소한 감정에 흔들리며 쭈그러들지 말고

하루하루를 푸르게 살아가야지~

작고 어려도 의젓한

커피나무를 어루만지듯 들여다보며

마음 다독다독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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