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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25. 2023

초록의 시간 628 가을을 보내며

낙엽길을 걷습니다

아침 산책길에 늘 가던 길이 아닌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갑니다

반짝 추워진 가을 끄트머리에서

가을을 보내는 마음으로

낙엽길을 걸으며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들의 소리를 들어 보려고요


그 길은 유난히 한적해서 

낙엽들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낙엽의 빛깔이 저마다 다르듯이

발아래서 올라오는 향기도 다르고

소리도 다르고 사연도 다른가 봐요

걷다가 잠시 멈추고 가만 귀를 기울이면

온갖 이야기들이 손을 흔들어댑니다


걷다 보면 핑크 지붕 성당도 나오고

성당 지붕에서 두 팔 활짝 벌리고

어서 오너라~ 반기시는

예수님도 만날 수 있어서

잠시 또 걸음을 멈춥니다


안녕하세요 예수님~

고개 들어 예수님과 눈을 맞추고

그 곁을 호위무사처럼 서성이는

하얀 천사 구름도 바라보고

예수님께 미소를 건네며

기도 인심도 팍팍 니다

오늘은 부실하고 부족한 제가

예수님을 위해 기도할게요

서툰 기도지만 웃으며 받아주세요~


예수님과 유쾌한 인사 나누고

길을 건너면 조그만 동네 빵집이 나옵니다

빵집 앞을 지날 때 빵 굽는 냄새 덕분에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지만

선뜻 빵을 사러 들어가지는 않아요

빵을 좋아하면서도 마구 선을 넘으며

많이 자주 먹지는 않으니까요


빵집을 지나면 발걸음을 붙잡는

깔끔한 김밥집이 나옵니다

조르르 김밥 한 줄

마음으로 맛나게 먹고는

그냥 스쳐 지나갑니다

김밥을 안 먹은 지 꽤 되었거든요

김밥 테두리를 벗겨내고 먹는 김밥은

이미 김밥이 아니니

김밥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가을을 보내는

아침 산책길 끝에는

내가 좋아하는 커피집이

어서 오라~ 기다리고  있으니

빵과 김밥 대신

향긋한 커피로 마무리합니다


낙엽 향기와 커피는

스며드는 향기가 닮았으니

지극히 당연한 마무리죠

가을은 가도 그 자리에 겨울이 오고

하얀 겨울과 커피 역시 잘 어울리니

이제 펑펑 쏟아지는 눈을 기다립니다


보내고 맞이하고

또 기다릴 것이 있어서

제법 괜찮은 인생이고

그런대로 멋진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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