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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26. 2023

초록의 시간 629 햇빛바라기

햇빛은 사랑입니다

자꾸 까먹습니다

무청 달려 있는 파르스름한 쪽이

매끈하니 희고 고운

밑동보다 더 단맛 나는 것을요


그래서 단맛이 우러나오는 음식

생채나 피클과 샐러드에는 

파르스름한 쪽 무를

단맛과 적당한 매운맛이 필요한

국과 탕이나 조림 등에는

하얀 밑동을 쓴다는데요


아삭한 가을 무는 보약이라고

엄마가 늘 말씀하셨죠

무는 밭에서 나는 인삼이라고

맛난 생채를 해주시던 생각이 납니다

음식 솜씨는 꽝이었어도

가지런히 무를 채 써는 엄마의 모습은

진지해서 아름답기까지 했어요


엄마의 무채 써는 모습에 감탄하며

옆에서 지켜보다가 엄마가 건네시는

파르스름한 무 한 조각 먹으면

달달하고 시원한 맛이 참 좋았어요

이 모든 게 안타깝게도 과거형이지만

무의 윗부분은 땅 위로 솟아 나와

햇빛을 많이 받아 달달해진다고 하죠

햇빛은 사랑이니까요


오늘은 하루 종일 구름 가득한 날이라

창으로 스미는 햇빛이 아쉽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느 분이

강아지를 안고 혼잣말처럼

춥지 추웠지~

애지중지하며 어르고 달래십니다

얼른 집에 가서 밥 먹자~


세상 달달한 목소리로 말하는데

그분에게는 강아지가 햇빛이고

또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가운 가을날이 더욱 외로워서

강아지를 말동무 삼으시는구나~


강아지에게 건네시는 말씀인데도

마치 스스로를 다정히 어루만지듯

춥다 추워 어서 가서 밥 먹어야지~

쓸쓸한 혼잣말처럼 귀에 들려오는 건

엄마 또래의 어르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는 해가 서럽듯 저무는 나이는

외롭고 시리고 고단하니까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대신

다시 되짚어 타고 내려와

엄마네 집으로 향합니다


햇빛과도 같은 엄마 곁이라

비록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일지라도

파르스름한 무 한 조각처럼

달고 아삭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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