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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27. 2023

초록의 시간 630 아빠는 아빠라서

초록 단풍잎처럼

차갑게 얼굴 변한 날씨지만

옷 두툼하게 껴 입었으니 걱정 무

주머니핫팩 하나 주머니에 넣고

따뜻함을 누리며 걷습니다


손끝의 온기만으로도

세상이 다 따스해 보이고

추위도 그다지 두렵지 않고

배짱까지 두둑해지는 듯

비에 젖어 촉촉한 아침 풍경도

여유로이 눈에 들어옵니다


유치원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꼬맹이 손에 귀여운 벙어리장갑을

단단히 야무지게 끼워주는

젊은 엄마의 손끝과 눈빛에서는

다디단 꿀이 뚝뚝~


어리고 예쁜 엄마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엄마꽃 리시안셔스 한 송이 같아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눈에서도 꿀이 뚝뚝~


그러나 아빠는 아빠라서

어딘가 허당이고 섬세하지 못해

아쉽고 어설프고 웃프기까지  합니다

꼬맹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찬바람 사이로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듬직한 목소리로 꼬맹이에게

모자를 쓰라고 하는데요


모자 쓰라는 아빠 말씀

점퍼에 달린 모자를 머리에 쓰고는

모자가 눈을 가리자 고사리손으로

눈을 가리지 않게 모자를 잡고 있는

꼬맹이의 손이 시릴 것 같아

짠하고 안쓰럽습니다


학생 때 배운 고려가요

'사모곡'문득 떠오릅니다

같은 부모라도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보다

더 지극하다는 노래였죠


호미도 날이 있지만

낫의 날같이 들지 못하듯

아버지도 어버이지만 그 사랑이

어머니만큼은 아니라는~


그러고 보니 철부지 아빠는

철이 덜 든 초록빛 낙엽 같아요

올 가을 낙엽들은 곱게 물들지 않고

초록인 채 뚝뚝 떨어진 이파리들이 많은데

이상 기후 때문이라고 하죠

그래도 햇빛 반짝 며칠 사이에

금세 고운 물이 들기도 한답니다


초록 단풍잎 같은 철부지 아빠도

지금 이 대로 그 모습 그대로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가던 길 되돌아봅니다

어느 순간 단단하게 철들어

야무지게 물들 때가 분명 올 테니까요


아빠는 아빠라서

조금 어설프고 부족하더라도

한 손에 우산을 받쳐 든 채

유모차를 밀고 가는 뒷모습은

엄마 못지않게 씩씩하고 듬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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