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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l 03. 2023

초록의 시간 583 마음이 웃퍼서

연거푸 웃퍼서

타박타박 길을 걷다가

햇살이 너무 쨍하게 눈이 부셔

햇살 가림용으로 부채 하나 샀어요

마구 쪼아대는 햇살로부터

얼굴도 살며시 가리다가

바람도 살랑살랑 부쳐봅니다


행운의 바람을 불러오는 부채인 듯

싱그러운 초록빛 네 잎 클로버

나만 잘되게 해 달라~는

얄미운 문구가 재미나고

간절함마저 짠하고 안쓰러워

자꾸 들여다보게 됩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 다 함께 잘되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겠으나

오죽하면 콕 찍어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었을까요


웃프다는 말이

이럴 때 어울린다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하고 말 그대로 웃퍼요


언젠가 왕초보 직장생활을 시작한

어느 후배님에게 들었던

하소연 한마디가 문득 생각나서

연거푸 웃픈  마음이 됩니다


세상에 나보다 더 낮은 건

마룻바닥뿐이라고 중얼거리며

웃픈 미소를 짓던 그 사람은

이제 계단을 중간쯤 올랐을까요


올려다보면 그 누군가가 있고

내려다보아도 그 누군가가 있어서

어중간하지만 왠지 안심이 되는

그런 자리에 머무르고 있을까요


터덜터덜 길을 가다가

햇살의 눈부심도 가리고

더위를 덜어내며 바람도 일으키는

작고 가벼운 부채 하나를 사 들고

나만 잘되게 해 달라는

철없는 문구에 쏠려

문득 생각합니다


직장 초년생도 아닌데

나보다 낮은 건 오직 마룻바닥뿐인

가장 낮고 보잘것없는 그 자리에

바로 지금 내가 있는 것 같다는

웃픈 마음이 들어 혼자 중얼거립니다


나만 잘되게 해 달라~

부채의 문구를 그대로 중얼거리다가

나도~ 잘되게 해달라고

토씨 하나 바꾸고는

연거푸 웃퍼서 하하 웃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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