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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Oct 03. 2023

초록의 시간 595 빗소리 구성진

가을을 살아요

또 하루의 문을 열고 나서니

나지막이 깔린 구름이불 사이에서

금방이라도 빗방울 톡톡

그러다가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아요


빗방울 떨어지기도 전에

비를 몰아오기라도 하듯이

어디선가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여

울음소리 구슬픈~이라고 쓰다가

울음소리 구성진~이라고 바꾸다가

빗소리 구슬픈~으로 바꾸다가

빗소리 구성진~으로 바꿉니다


울음소리보다는

빗소리가 낭만적이고

구슬픈~보다는 구성진~이

마음을 달래기에 좋으니까요


어릴 적에 마루 끝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늘

그 푸른빛이 너무도 선명하여

마음이 싸아해지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작고 어린것의 마음 안에 깃들던

슬픔의 빛은 청명한 하늘빛이었고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적시던

빗소리는 적막하고 고즈넉했어요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마루 끝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의 빗소리를 듣던 어린것은

내 안에 남아 살고 있나 봅니다


 순간 숨 쉬듯

습관처럼 나를 다독이며

빗소리 구성진 가을을 살아보자고

부질없이 중얼거릴 때마다

내 안에 그 작고 여리고 소중한

어린것이 쏘옥 고개 내밀어요


그러자~고

또 하루 살아보자~고

견딜 만하~서로의 어깨 토닥이며

두 다리 쭉 뻗고  펑펑 울고 싶은 마음을

어르고 달래며 가을을 살아갑니다


안에 살고 있는 철부지 어린것이

문득 창문 열고 나를 손짓해 부르며

해맑은 미소를 건네기도 하고

세상이 외롭고 고달프다고 투덜거릴 때마다

살며시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려주고

창가에서 서툰 노래를 불러주며

나를 달래고 위로합니다


고사리손으로

오히려 나를 쓰담쓰담

가만 고개를 끄덕이고는

괜찮아~ 괜찮다고

살며시 웃어주기도 해요


때로는 흐르는 시간이

그 곁에 머뭇거리는 추억들이

소리도 없이 나를 위로하며

이렇게 말하는 듯~


그 작고 여리고 어린것이

애써 견디며 살아온 시간을

엄살 부리지 말고 잔잔히

그리고 천천히

깊이 있는 세월로 살아가는 일이

바로 내 몫이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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