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596 나 홀로 커피타임
마법의 순간
청춘과도 같이 싱싱한
부추 한 단을 샀습니다
빗소리의 소란함을 달래며
바삭하게 부추전을 부쳐 먹으려고요
그러나 생각뿐 손이 따라주지 않아
잔머리만 굴리며 게으름 피우다가
그냥 비 오는 하루가 갔습니다
하루 지난 부추를 보며
멈춘 빗소리 따라
물 건너간 부추전 대신
쌀쌀해진 날씨에 어울리는
부추 수제비를 해 먹자고
생각하며 중얼거리다가
부질없이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날이 맑으면 맑아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불어서
먹고 싶은 건 하나둘 떠오르는데
어릴 적 함께 살던 솜씨 좋은 고모도 없고
솜씨 꽝이지만 이것저것 해주시던
엄마는 음식에서 손을 놓으신 지 오래
먹고 싶다고 해도 해 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해 먹어야 하는 내가
왠지 짠해서 마음이 찡해졌어요
부추 한 단에 마음까지 찡해지다니
그 또한 민망해서 피식 웃고 말았죠
게으른 손이 생각의 부지런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에
냉장고 채소칸 안에서 시들시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가며
하루이틀 부질없이 말라가는
부추를 오도카니 바라보다가
더 시들기 전에
일단 씻어두기로 합니다
그리고 동네 한 바퀴~
무엇이든 느리게 천천히
미루고 쉬어가며 해야 되는 거니까요
깨끗이 씻어는 두었으니
이미 절반은 한 셈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은
남이 해주는 게 최고인데
날 위해 음식을 만들어 줄 사람은
이제 남이 아닌 나뿐이니 어쩔~
부추전이든 부추수제비든
먹고 싶은 마음 고이 접어
부추와 함께 밀폐용기에 넣고
일단 남이 내려주는 커피 한 잔
마시며 잠시 마음을 비워야겠어요
부추전 먹은 셈 치고
개운한 아메리카노 한 잔
부추수제비 한 그릇 먹었다 치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게으른 자의 여유를 부려봅니다
부추전 한 조각과 부추수제비
맛있게 다 먹은 셈 치고
이도 저도 번거로우면
부추 듬뿍 넣어
달걀말이라도 하면 된다고
습관처럼 잔머리 굴려가며
나 홀로 커피타임~
커피잔 속에 부추전도 있고
한 그릇 부추수제비도 있고
빛깔 곱고 폭신한 부추달걀말이도 있으니
한 단의 부추가 한 잔의 커피가 되는
향기로운 마법의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