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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Oct 07. 2023

초록의 시간 597 이미 헤어졌을까요

아마릴리스는 마주 보지 않아요

아마릴리스랍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 이름 같은데

소녀가 아니라 꽃 이름이래요


아침 햇살을 좋아하는

매콤하고 칼칼한 느낌을 주는

크고 붉고 화려한 꽃송이가

당당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으니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한참 바라봅니다


향기도 좋다는데

다가서기가 쉽지 않아요

너무나 바르고 도도한 모습에

눈을 맞추기도 버거운데

어찌 감히 향기를 맡겠노라

얼굴을 들이밀겠어요


더구나 이 꽃들은

이미 헤어졌을까요

서로 마주 보기는커녕

아예 등을 돌리고 있어요


꽃대가 거침없이 쑥 올라오며

훌쩍 키가 자라더니

그레한 꽃봉오리 송이가

붉은 입술처럼 수줍게 맺히다가

활짝 피어나면서 서로를 외면하네요

아마도 영화 한 편을 보았나 봐요

그 영화를 보며 헤어질 결심이라도 한 걸까요


혹시라도 꽃말이

헤어질 결심 아닐까 하고

찾아봤더니 아니군요

화려하고 큼직한 꽃머리답게

꽃말도 여럿인데 그중에서

눈부신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이

잘 어울립니다


빛이 난디는 의미를 가진

매혹적인 아마릴리스

빛이 나는 밝은 빨강 두 송이 꽃이

저마다 눈부시게 아름다우니

차마 마주 볼 수가 없어 살며시

고개를 돌리고 있나 봅니다


헤어질 결심이라도 한 듯

돌아서 있는 두 송이 붉은 꽃

그러나 헤어질 결심은 아닌 거죠

사이에서 배시시

작고 앙증맞은 꽃망울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그렇군요

만남 뒤에는 헤어짐이

그리고 다시 만남이 이어지는 걸 보면

꽃이든 인생이든 한결같이

인연의 반복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마릴리스는

헤어지기 위해 돌아선 것이 아니라

헤어지지 않고 오래 함께 하기 위해

살짝 고개를 돌린 셈이죠


좋은 인연은 무작정 다가서서

들이대고 상처 내며 부대끼는 게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귀히 여기며

소중히 아끼고 지켜주기 위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니까요


나 역시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해

덥석 다가서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빛이 나는 꽃 아마릴리스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바라봅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속삭이듯이

붉은 꽃 아마릴리스가 웃고 있어요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배려인 거라고

사랑은 그런 거라고

늘 마주 보는 것만 사랑이 아니고

어깨를 나란히  서로에게 기대는 것만

사랑이 아니라고 붉은 꽃이 말해요


환호하는 것만 사랑이 아니라

침묵하는 것도 사랑이고

가끔은 돌아서서

나만의 시간과 공간 안에서

혼자만의 꿈을 꾸고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는 것이

진심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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