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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Oct 16. 2023

초록의 시간 602 사랑스러운 판타지가 필요할 때

일본영화 '운명'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울 동네 커피전문점 건너편

기다랗게 늘씬하매끈하고 멋진

하얀 리무진이 멈춰서 있곤 합니다

리무진 기사님도 커피 한 잔의

쌉싸름한 여유를 누리는 시간일 테죠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리무진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 보거나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커피집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내게는

잠시잠깐 상상의 날개를 파드득 펼쳐보는

즐거움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리무진을 타고 슝~ 떠나는 대신

물끄러미 리무진을 바라보며

어디론가 떠나는 상상을 해 보다가

커피 한 잔 들고 집으로 돌아와

일본영화 '운명'을 봅니다

현실의 리무진 대신

영화라는 이름의 리무진을 타고

상상여행을 떠나는 셈이죠


사람과 요괴들이 사이좋게

함께 어울려 사는 마을이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세상이긴 하지만

꽤나 황당무계한 설정이라서

허무맹랑하기까 합니다


황당무계란

허황되고 근거 없다는 의미고

터무니없이 허황하고 실속이 없을 때

허무맹랑하다고 하는데요

뭐 어때요~ 영화적 상상이니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현실이 아니니 괜찮습니다


황당무계하고 허무맹랑하지만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상상이 즐겁고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이 재미나고

감성적인 전개가 흐뭇합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니고

영화니까요


일상생활 속에서

툭하니 유령이 튀어나오고

아무 때나 요괴들이 등장하고

죽은 이들과 사신(안도 사쿠라)까지

불쑥 나타나는 재미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잇시키(사카이 마사토)와

어린 아내 아키코( 타카하타 미츠키)

그들과 함께 하는 100살이 훌쩍 넘은

가사도우미 킨(나카무라 타마오) 할머니와

가난귀신(타나 카민)까지

번잡하고 떠들썩한 영화 속 세상이 

엉뚱하고 신기한데요


귀한 사람을 잃고 나서야

휑한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 소중함의 깊이를 깨닫고

애태우며 안타까워하는 것은

현실에서와 마찬가지인데

죽은 이들의 세상 속으로 떠나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현실이 아닌 영화 속이니

가능한 일입니다


잇시키에게 급히 뛰어가다가

요괴가 발목을 붙잡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느닷없이 유령이 되고 만 아키코는

어쩔 수 없이 저 세상 황천국으로 떠나고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오기 위해

황천국 열차를 타고 잇시키는 떠납니다


두 사람은

몇 번의 생을 거치는 동안

어김없이 만나 첫눈에 반하고

서로에게 끌려 부부의 연을 맺은

운명연인들인데요


아키코를 짝사랑하여

두 사람 인연의 고리를 끊으려는 

요괴 천두귀에게서 아키코를 구하려다

잇시키는 그만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사랑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랑보다 강한 용기가 필요한 법이죠


잇시키를 구하기 위해

아키코가 천두귀와 맹세를 하려던 순간

가난귀신에게 받은 밥그릇 덕분에

천두귀와의 맹세 직전에 풀려나

두 사람은 황천국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니까요


수명을 다할 때까지 잘 살라~

사신의 축복과 배웅을 받으며

두 사람은 다시 평온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할아버지 성화에

억지로 교수가 된 아버지와

변장한 아버지를 돕는 엄마를

황천국에서 만난 잇시키는

비밀의 집과 부모님에 대해

비로소 이해하게 되고


달아나느라 힘을 많이 쓰는 바람에

그만 깨져버린 밥그릇을 정성껏 붙이고

따뜻한 밥을 담아 잇시키에게 건네는

아키코는 행복해 보입니다


언젠가 어머니처럼

잇시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아키코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이미 충분히 힘이 되고 있다고 미소 짓는

잇시키의 독백이 흐뭇합니다


유쾌하고 즐거운 판타지가 필요할 때

마침 나에게 와준 영화 '운명' 덕분에

자유로이 상상여행을 다녀온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예술가가 아닌 그 누구라도

상상의 힘으로 살아가고

영화 속에서  세상 황천국이 

바라보는 이에 따라 달라 보이듯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라보는 사람시선에 따라

조금씩 달라 보이는 세상이니까요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도

마주하는 내 마음과 생각에 따라

고달프고 힘겹더라도 얼마든지

사랑스럽고 유쾌한 판타지가 될 수 있으니 

다행이고 고맙고 재미난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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