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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07. 2023

초록의 시간 613 어깨 내려뜨리기

그리고 납작 엎드리기

날씨가 느닷없이

중2병에라도 걸린 것일까요

푹 눌러쓴 모자까지도 휘리릭

저만치 날려버리는

엉망진비바람은 기본

그러다 반짝 햇살은 옵션


미친 듯 미치지 않은 날씨 덕분에

비를 가리려고 쓴 우산은

우산이 아니라

바람막이 풍산이 되었으나

그마저도 거센 비바람에 밀려

정신을 못 차리고 휘청댑니다


모자가 떼구루루 달아나지 않도록

모자를 우산으로 누르고

우산이 정신 사납게 날아가지 않도록

두 손으로 우산을 붙잡고 걷다 보니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눈에 보이는 건

바닥에 수북이 납작 엎드린

노란 은행입들입니다


비에 젖은 은행잎은 미끄러우니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 걷는 사이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뼛거리게 되어

모든 세포들이 잔뜩 위축

뻣뻣한 긴장감으로 똘똘 뭉친 

완전 겁보에 쫄보가 되었어요


순간 친구의 조곤조곤

고마운 잔소리가 떠오릅니다

어깨 힘주면 긴장이 되어

안 풀리니까 어깨 힘 빼야 해

춥다고 웅크리지 말고

자주 어깨 툭 내리고~


친구의 말에 의하면

룰루랄라 놀면서도 허리 안 아픈

축 늘어져 다녀서랍니다

우리 같은 쫄보들은

습관처럼  긴장이라 어깨 힘 주니 

덩달아 허리까지 아프다는 거죠


웅크린 어깨 펴고

뭐 그까이꺼~ 어깨 툭 내리고

축 늘어지는 거 말은 쉽지만

쉬운 듯 쉽지 않다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피식 웃으며 덧붙입니다

모자가 안 달아나서 다행

우산이 안 날아가서 참 다행

다행이란 말 참 좋지

마음 놓이고

어깨가 툭 내려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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