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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16. 2023

초록의 시간 620 애썼다는 말

마음을 준다는 말

내가 만나러 가지 못하니

친구가 나를 보러 옵니다

날 보러 오라고 노래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친구가 나를 보러 옵니다


명동 가는 길에

울 동네 지하철역에서 내려

밥 한 끼 함께 하자고

우산 끄트머리에 빗방울 매달고

사뿐 걸음으로 친구가 옵니다


하필 우정의 점심시간에

늦가을비도 함께 하자며 반갑게 다가서고

빗물에 얼굴 씻은 길가의 꽃들이

시들어가는 순간에도 반짝 눈망울 빛내며

시들어가면서도 꽃다운 미소 건넵니다

꽃이니 꽃다우려고 애쓰는 모습이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꽃들도 애쓰고

그 곁의 풀잎들도  애쓰고

낭만적인 배경으로 흩뿌리는

늦가을비에 젖어들며

노랑 빨강 단풍잎들도 애씁니다


가을이 저물듯이

가을꽃들도 이울고

풀잎들과 단풍잎들도

차분히 겨울여행을 준비하느라

애쓰는 모습이 애잔하고 쓸쓸합니다


만나는 모든 것은

헤어짐을 앞두고 있으니

이제는 기쁘게 마중했던 것들과

작별을 위해 배웅해야 하는 때


빗줄기도 가을과 작별하고

꽃들과 나뭇잎들도 가을을 배웅하듯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배웅하며

저무는 가을과 작별합니다


이 비 지나고 나면

성큼 추위가 밀려오고

겨울도 큰 걸음으로 다가서고

무엇이든 반갑게 마중하면

다정한 친구 되어 곁에 머물다가

아쉽게 배웅할 날이 올 거예요


빗줄기 타고 나를 보러 와준

친구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며

오느라 애썼다

가느라 애쓴다~고

중얼거리며 배웅합니다


나를 향해 오는 모든 것

나를 스치고 떠나가는 모든 것들을 향해

애썼고 애쓴다~ 는 말을 건넵니다

오느라 애썼고 가느라 애쓴다

쓰담쓰담 애썼다~

다독다독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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