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21 엄마표 또 김치
힘들게 무겁게 또 김치
음식솜씨 꽝에
살림솜씨 꽝이시던
울 엄마는 가방끈도 꽝꽝
그러나 영리한 두 눈 반짝 빛내며
그 두툼한 책 펄 벅의 '대지'를
재미나게 읽으셨어요
어느 친구는
계절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별미음식들이 시시때때로
생각나 아쉽고 그립다는데
내게는 딱 이거야~ 하고 떠오르는
엄마표 음식이 안타깝게도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주민센터 앞을 지나는 길에
배추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불우이웃 돕기 김장김치 담는 걸
잠시 바라보는데
엄마표 김치가 문득 생각났어요
부지런한 살림꾼도 아니시면서
시도 때도 없이 김치를 담가
무겁게 들고 오시던 울 엄마는
힘들게 또 김치~
무겁게 또 김치~
감사 인사는커녕
구박에 타박만 당하셨는데요
내 투덜거림 싹 무시하고
훌훌 털고 가시는 뒷모습에는
다신 김치 따위 안 담글 거라는
야무진 결심으로 가득하셨는데
며칠 후에는 어김없이 김치통
무겁게 들고 오셨더랬죠
그 김치 맛을 본 지도
한참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엄마표 또 김치가
아쉽고 그립습니다
또 김치 담가 주시던 울 엄마께
김치 좀 담가 달라고 하면
피식 웃으시겠죠
흥칫뿡이다~ 하실지도 모릅니다
엄마한테 거꾸로 구박에 타박 맞기 전에
살림마트 김치 주문하러 가야겠어요
엄마 똑 닮은 딸이라
나 역시 게으름쟁이에
음식 솜씨 완전 꽝이거든요
솜씨가 없는 내게는
모든 김치가 황금빛 금치라서
다 무르고 익어터진 후에도
딘 한 가닥 버리지 않고
말갛게 씻어서 먹습니다
엄마가 더운 여름이면
입맛 없을 때 딱이라며
묵은 김장김치 씻어서 참기름 넣어
조물조물 무쳐주시던 그 맛을 기억하며
밥 한 그릇 뚝딱~
묵은 김치 한 조각에 스민
그리운 엄마 손맛을 먹습니다
그리운 옛맛이라 쓰고
그리운 순간이라 읽어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