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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Nov 17. 2023

초록의 시간 621 엄마표 또 김치

힘들게 무겁게 또 김치

음식솜씨 꽝에

살림솜씨 꽝이시던

울 엄마는 가방끈도 꽝꽝

그러나 영리한 두 눈 반짝 빛내며

두툼한 책 펄 벅의 '대지'를

재미나게 읽으셨어요


어느 친구는

계절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별미음식들이 시시때때로

생각나 아쉽고 그립다는데

내게는 딱 이거야~ 하고 떠오르는

엄마표 음식이 안타깝게도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주민센터 앞을 지나는 길에

배추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불우이웃 돕기 김장김치 담는 걸

잠시 바라보는데

엄마표 김치가 문득 생각났어요


부지런한 살림꾼도 아니시면서

시도 때도 없이 김치를 담가

무겁게 들고 오시던 울 엄마는

힘들게 또 김치~

무겁게 또 김치~

감사 인사는커녕

구박에 타박만 당하셨는데요


내 투덜거림 싹 무시하고

훌훌 털고 가시는 뒷모습에는

다신 김치 따위 안 담글 거라는

야무진 결심으로 가득하셨는데

며칠 후에는 어김없이 김치통

무겁게 들고 오셨더랬죠


그 김치 맛을 본 지도

한참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엄마표 또 김치가

아쉽고 그립습니다


김치 담가 주시던 울 엄마께

김치 좀 담가 달라고 하면

피식 웃으시겠죠

흥칫뿡이다~ 하실지도 모릅니다


엄마한테 거꾸로 구박에 타박 맞기 전에

살림마트 김치 주문하러 가야겠어요

엄마 똑 닮은 딸이라

나 역시 게으름쟁이에

음식 솜씨 완전 꽝이거든요


솜씨가 없는 내게는

모든 김치가 금빛 금치라서

무르고 익어터진 후에

한 가닥 버리지 않고

말갛게 씻어서 먹습니다


엄마가 더운 여름이면

입맛 없을 때 딱이라며

묵은 김장김치 씻어서 참기름 넣어

조물조물 무쳐주시던 그 맛을 기억하며

밥 한 그릇 뚝딱~


묵은 김치 한 조각에 스민

그리운 엄마 손맛을 먹습니다

그리운 옛맛이라 쓰고

그리운 순간이라 읽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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