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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02. 2023

초록의 시간 635 바람도 바람 나름

모자도 모자 나름

단것을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달달한 위로가 필요할 때

가끔 들르는 카페에서

아인슈페너를 마십니다

몽실몽실 구름모자가 따사로워

기분까지 달착지근 포근해집니다


내가 모자를 까망으로 바꾼 걸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아인슈페너도 커피잔을 바꾸었어요

허리가 잘록하니 날렵한 빨강 잔에서

두툼하게 동그란 아이보리 잔입니다

열정의 빨강 잔도 좋았으나

두 손으로 따스이 감쌀 수 있는

두툼하고 포근한 잔도 좋아요


찻잔도 찻잔 나름

사연이 있고 분위기가 있으니

무엇이든 가끔은 바꾸는 것도

낯설고 생소한 만큼 반갑습니다


하루가 가고 달이 바뀌고

계절이 저물고 해가 바뀌다 보면

기분이 달라지고 분위기까지 새로워지니

바뀌면 바뀌는 대로 괜찮은 것이

우리 삶이고 세월인 거죠


그래서 바꾸었습니다

내 손으로 바꿀 수 있는 모자 하나

계절이 바뀐 기념으로

내가 바꿀 수 있는 소소한 것

하나를 바꾸었어요


모자도 모자 나름

오랜만에 까망 모자로 바꾸었거든요

칙칙하게 어두운 색 모자를 쓰면

보자마자 모자 바꿔 쓰라고

습관처럼 툭 구박 한마디 던지시던 엄마가

이제는 그 잔소리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맘 놓고 까망 모자를 쓰는데

마음이 그다지 가볍지 않아요


내게 있어 겨울 모자는 따스하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

색깔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나

엄마의 구박과 잔소리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

아쉽고 안타깝고 쓸쓸할 뿐


내 맘대로 까망 모자를 쓰고도

엄마의 타박에서 벗어난 나는

휑하니 바람 부는 겨울길을

낙엽 한 이파리처럼 걸어갑니다


바람도 바람 나름 제 길이 있어서

마음 갑갑할 땐 바람 길을 따라 걷고

몹시 추운 날에는 요리조리

바람 길을 피해 걷습니다


오늘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바람에 끄떡없는 모자도 썼으니

바람의 길을 애써 피하지 않고

맞짱이라도 뜨듯이 걸어봅니다


찻잔도 찻잔 나름

모자도 모자 나름

바람도 바람 나름

계절도 계절 나름~


노래도 뭣도 아닌 걸

박자에 맞춰 흥얼거리며

어느 시인의 바람 구두 대신

바람의 모자를 쓰고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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