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45 할머니의 주먹밥이 그리울 때
아란치니 한 알
가끔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
이제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몹시 적막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어릴 적 간장비빔밥을 생각하며
잡곡밥 대신 하얀 즉석쌀밥 하나 돌려
간장 한 숟가락에 참기름 듬뿍
깨소름 솔솔 뿌려 비벼 먹거나
그마저도 번거로울 땐
동글동글 내 주먹 만한
아란치니 하나를 사 먹습니다
아란치니는
주먹밥 튀김입니다
말 그대로 주먹처럼 둥글게
뭉친 밥이 주먹밥인데요
10세기 무렵
시칠리아가 아랍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이탈리아 성인 성 루시아 기념 축제날
빵과 파스타 대신 밥으로 만들어 먹던
천년 나이 먹은 전통음식이랍니다
동그란 모양이 대부분인데
원뿔 모양으로도 만들었다고 해요
어릴 적 울 할머니가
밥 잘 안 먹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고소한 콩가루를 듬뿍 묻혀
만들어 주신 주먹밥은
손으로 들고 먹기에 딱 좋게
갸름하니 작고 예뻤어요
새하얀 쌀밥을 고슬고슬하게
예쁘게 뭉쳐 노란 콩가루옷을 입힌
주먹밥으로 나를 달래시던
울 할머니가 생각나면
동네 피자집에서 동글동글
아란치니 딱 하나를 테이크아웃
덤으로 어릴 적 추억도 테이크아웃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토마토튀김 주먹밥 아란치니를
먹기 좋게 절반으로 나누면
따뜻하게 녹은 모차렐라치즈가
눈물처럼 흘러나옵니다
우리 강아지 누가 울렸느냐고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듯
누가 우리 강아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울 할머니는 닭똥 같은 눈물을
달구똥 같은 눈물이라고 하셨죠
언제나 내 편이던 할머니 생각에
잠시 아릿한 마음입니다
동글동글 손안에 들어오는
주먹밥 튀김 아란치니 한 알에
소스를 곁들이고
어린잎채소도 나란히
그리고 어린 날의 추억까지
그리움으로 함께 하는
고소하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달구똥 같은 눈물이라고 중얼거리면
닭똥 같은 눈물 대신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