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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Dec 12. 2023

초록의 시간 645 할머니의 주먹밥이 그리울 때

아란치니 한 알

가끔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

이제는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몹시 적막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어릴 적 간장비빔밥을 생각하며

잡곡밥 대신 하얀 즉석쌀밥 하나 돌려

간장 한 숟가락에 참기름 듬뿍

깨소름 솔솔 뿌려 비벼 먹거나

그마저도 번거로울 땐

동글동글 내 주먹 만한

아란치니 하나를 사 먹습니다


아란치니는

주먹밥 튀김입니다

말 그대로 주먹처럼 둥글게

뭉친 밥이 주먹밥인데요


10세기 무렵

시칠리아가 아랍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이탈리아 성인 성 루시아 기념 축제날

빵과 파스타 대신 밥으로 만들어 먹던

천년 나이 먹은 전통음식이랍니다

동그란 모양이 대부분인데

원뿔 모양으로도 만들었다고 해요


어릴 적 울 할머니가

 잘 안 먹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고소한 콩가루를 듬뿍 묻혀 

만들어 주신 주먹밥은

손으로 들고 먹기에 딱 좋게

갸름하니 작고 예뻤어요


새하얀 쌀밥을 고슬고슬하게

예쁘게 뭉쳐 노란 콩가루옷을 입힌

주먹밥으로 나를 달래시던

울 할머니가 생각나면

동네 피자집에서 동글동글

아란치니 딱 하나를 테이크아웃

덤으로 어릴 적 추억도 테이크아웃


이탈리아 시칠리아 출신

토마토튀김 주먹밥 아란치니를

먹기 좋게 절반으로 나누면

따뜻하게 녹은 모차렐라치즈가

눈물처럼 흘러나옵니다


우리 강아지 누가 울렸느냐고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듯

누가 우리 강아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울 할머니는 닭똥 같은 눈물

달구똥 같은 눈물이라고 하셨죠

언제나 내 편이던 할머니 생각에

잠시 아릿한 마음입니다


동글동글 손안에 들어오는

주먹밥 튀김 아란치니 한 알에

소스를 곁들이고

어린잎채소도 나란히


그리고 어린 날의 추억까지

그리움으로 함께 하는

고소하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달구똥 같은 눈물이라고 중얼거리

닭똥 같은 눈물 대신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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