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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an 14. 2024

초록의 시간 673 빚진 인생

미안하고 고맙고 부끄러워서

평소와 다르게

바로 곁에 커피 한 잔 없이

크림 듬뿍 얹은 브라우니 한 조각이

대체 웬일인지 궁금 안 궁금?


그까이꺼 궁금하지 않다고 해도

우리 사이 친한 사이니 알랴줌~

푸른 우리 지구별

환경 생각하는 마음으로

개인컵을 들고 갔더랬죠


유난히 커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한참을 기다려 텀블러에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쫄래쫄래 집에 왔어요


그런데 이게 뭔 일?

그야말로 머선 일이고?

텀블러에는 에스프레소 샷이 빠진

뜨거운 맹물만 찰랑찰랑~


앙꼬 없는 찐빵도 아니고

김 빠진 맥주도 아닌

에쏘샷이 빠진 커피

텅 빈 커피를 들여다보자니

문득 드는 생각이 하나 습니다


술은 마시지 않으나

혹시 김 빠진 맥주 한 잔이나

혹시라도 샷 빠진 맹물 커피를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누군가에게 내밀지 않았는지

나도 모르게 그 누군가에게

알맹이 쏙 빠진 껍데기를

생색내며 건네지 않았는지


그리하여  인생이

말 그대로 맹물 인생이 아닌지

그나마 맹물도 채우지 못한

텅 빈 인생이거나

빚진 인생 아닌 것인지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그러고 보니 맞아요

텅 빈 맹물 인생 맞습니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빚진 인생이 되어 버렸어요

미안하고 고맙고 부끄러워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마다

묵직하게 빚진 마음이 되곤 합니다


멋진 인생도 있고

화려한 인생도 있고

탄탄대로 쭉쭉빵빵 잘 나가는

근사하고 그럴싸한 인생도 있는데

부족하고 부실한

나는 그렇지 못하니까요


이생망이라는데

이생폭망까지는 아니지만

하필이면 빚진 마음으로

빚진 인생을 살고 있다 생각하니

이를 어쩔~ 


샷 빠진 맹물 커피야

다시 채워오면 되지만

텅 빈 인생은 그럴 수 없으니

대체 어쩔~


오던 길 다시 되돌아가서

얼룩진 사연들 말끔히 지우고

못난 흔적들도 깨끗이 닦아 내고

새로이 살아볼 수도 없으니

참으로 어쩔~


드라마 같은 인생이라지만

드라마도 못 되는 인생이라서

최종화 서둘러 마치고

새 드라마를 시작할 수도 없는

한 번뿐인 인생이니

그야말로 어쩔~


이제 와 어쩔 수 없으니

못난 글씨로 반성문 쓰는 대신

미안한다고 사과부터 하고

고맙다고 배꼽인사도 드리고

민망하고 부끄럽지만

사랑한다는 쑥스러운 고백도

숟가락 얹듯 슬몃 얹어봅니다


한없이 부족하고 부실하다 보니

그날이 그날인 것이 다행이고

그날이 그날이어서 참 고맙고

시간들이 그대로 쭉 지속될 것 같으나

그럴 리 없으니  또한 안타깝지만

빚진 마음 갚아가듯 이렇게

부끄러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쩜 우리 모두 

자신에게는 맹물 인생

누군가에게는

빚진 인생일지 모르지만

그 빚을 빛으로

천천히 갚아나가기로 해요


다소곳한 사과의 눈빛으로

진심 어린 고마움의 눈빛으로

깊고도 깊은 사랑의 눈빛으로

순간순간 갚아나가면

조금은 마음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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