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00 소풍 가방을 챙기며
봄소풍을 기다립니다
다가서는 봄을 시샘하듯
우중충 꾸무럭 흐리고 비 오다가
싸락눈 흩어지더니 밤새 함박눈 펑펑
한낮 소낙눈 예보까지 호화로운
날씨 종합선물세트 덕분에
가까운 뒷산에도 못 가고
동네 공원에도 못 나가니
답답하고 갑갑하다는 친구를 위해
봄소풍 가는 셈 치고
미리 소풍 가방을 챙겨봅니다
어릴 적 소풍 가기 전날 저녁
딸바보 아부지가 한아름 사다 주신
간식거리들을 소풍 가방에 챙겨 넣으며
즐겁고 신나고 행복했던 장면이 떠올라
느닷없이 기분 좋으면서도
애틋한 마음입니다
우리 인생이 소풍인 것인데
그 시절 철부지 어린 마음에는
소풍을 어디로 가느냐~
누구와 함께 가느냐~ 보다도
소풍 가방 안의 것들이 더 중요했고
그다음 중요했던 건 소풍날의 날씨였죠
요즘은 휴대폰에 시시각각
비 그림에 눈 그림까지 날씨가 뜨지만
나 어릴 적에는 그저 하늘을 쳐다보며
내일 비 오지 말기를 부탁했을 뿐
비가 안 오고 날이 맑으면 아싸~ 다행이고
찡그린 하늘에서 비가 오면
오목조목 야무지게 챙겨 놓은
소풍 가방이 무색하게
소풍날이 연기되기도 했어요
친구가 묻습니다
들여다볼 수도 없는
인생이라는 우리 소풍 가방에
아직 뭐가 남아 있을까
내가 대답합니다
이미 텅 비어 있지 않을까
친구가 또 물어요
그래도 뭐 하나쯤 남아 있지 않을까
내가 또 대답합니다
소풍 가방 흔들어보니
뽀시락뽀시락 소리 난다
과자 뽀시래기들 남았나 보다
그렇게 실없이 웃어봅니다
쌓인 눈 녹아 날이 풀리고
여기저기서 꽃소식 날아오면
친구야 우리 봄소풍 가자~
소풍 가방은 번거로우니
맨손으로 가벼이 그냥 가자
이제 우리 조금 철이 들어서
소풍날의 날씨 그다지 상관없고
소풍 가방에 들어있는 그 무엇보다도
소풍을 함께 가는 우리가
더 귀하고 소중함을 알게 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