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696 녹록지 않아요
만만하지도 않아요
커피를 좋아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가끔은 적당히 거리를 두는
두어 걸음 쉼이 필요합니다
쉼이라고 쓰고
밀당이라 읽는 것도 괜찮죠
내게도 귀여운 꼬리 달린 쉼표가
커피에게도 잠깐의 휴식이 필요해요
매일 보는 서로의 얼굴
너무 당연해서 설렘 사라지고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익숙함에 물들어 편안함을 넘어서면
어느 날 문득 녹록해지다가
데면데면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녹록하다~ 는 말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다거나
만만하고 상대하기 쉽다는 뜻이래요
어쩌다 보니 녹록해져 버린 커피 한 잔
그러나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인생은 녹록지 않아요
녹록지 않은 인생이라는 생각에
어깨가 축 늘어져 쉼이 필요할 때
그럴 땐 쌉싸름 녹차를 마십니다
연초록 빛으로 맑고 투명해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개운해지거든요
집콕 마음콕
갑갑한 네모 칸 안
붙박이 시간에서 벗어나
이왕이면 분위기 좋은 카페
따사로운 조명 아래 앉아봅니다
그래야 사진이 부드럽게 나오니까요
욕심을 더 부리자면
탁자 위에 함박눈처럼 하얀 안개꽃
그 사이사이에서 응원의 손짓 건네는
프리지어 담긴 꽃병도 하나
곁에 두어야죠
새하얀 안개꽃더미 속
주홍빛 프리지어 몇 송이가
밝고 순수하고 해맑아서
문득 마음이 설레고
당신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한다~는
힘찬 미소까지 덤으로 다가와
두둥실 기분이 맑아지고
덩달아 미소가 맺히지 않나요
이왕 부린 욕심 곁에
하나 더 욕심을 덧붙인다면
건너 자리에 다정한 친구 한 사람
고운 미소와 함께 앉혀 봐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외로움이 한결 덜어지니까요
하루하루 사는 게
녹록지도 만만하지도 않으나
딱 나만 그런 것도 아니겠죠
그럴 땐 친구와 수다를 떨어봐요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등허리에 잔뜩 들어간 긴장이
스르르 풀려 마음이 편안해지고
뭐 그까이꺼~ 힘도 조금 생기면서
웬만큼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땐
그냥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숨소리의 깊이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느끼는
친구 한 사람과 나란히 앉아
묵묵히 차를 마셔요
내 곁에 바로 나
때로는 나의 빛으로 눈부시고
어둡고 깊은 그림자가 되기도 하며
가끔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아
야속할 때도 있으나
그래도 늘 나와 함께 하는
내 마음이라는 평생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