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17 봄꽃 두 송이
송이송이 할미꽃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추었어요
바로 앞에 실버카를 밀고 가시던 할머니와
맞은편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오시던
할머니가 반가운 인사를 나누시더니
한참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셨거든요
두 분의 정다운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몇 걸음 뒤에 멈추어 서성거렸습니다
하하 호호 소녀들처럼 웃으며
오순도순 재미난 이야기꽃에
웃음꽃까지 활짝 피우시더니
실버카 할머니가 아예
실버카 의자를 펴고 앉으셨어요
봄볕 아래 마주 앉으신
두 분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두어 걸음 뒤에서 마냥 서성일 수도 없고
두 분 사이를 더는 방해하지 않으려고
비잉 돌아 길을 건넜거든요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 보니
할미꽃 두 송이가 봄바람에 나풀대듯이
실버카 할머니와 전동휠체어 할머니
두 분이 함께 하시는 우정의 시간이
눈부신 봄볕 아래 다정하고 애틋했어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까요
뭐가 그리 신나고 재미나신 걸까요
봄꽃 두 송이가 소풍이라도 나온 듯
곱고도 애잔한 장면을 돌아보고
다시 또 돌아보았습니다
여름이 오면 큰 나무나 담장에 기대어
애처롭게 덩굴손을 뻗어나가며
꽃송이마다 환하게 꽃등을 밝히는
주홍빛 능소화 꽃송이들이
문득 떠올랐어요
능소화는 곱고 화려하지만
홀로 반듯하게 고개 들지 못하고
어딘가에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하며
미안한 듯이 기대어 피는 꽃이라
볼 때마다 안쓰럽고 안타까웠어요
누군들 홀로 서지 못하고
손 내밀어 기대고 의지하며
피어나는 꽃이 되고 싶으랴~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지곤 했죠
송이송이 봄꽃송이 같은 두 분도
제 발로 멋지게 서서 보란 듯이
두 발로 또박또박 반듯하게 걸으며
마음만큼은 봄하늘 높이
가비얍게 날아오르고 싶으시겠죠
실버카에 의지해 걸어도
전동휠체어에 기대앉아 있어도
어느 누구에게나 봄길 꽃길은
포근하고 아름답고 눈부신 길이니
마음만이라도 가벼이 날아오르시라고
듬뿍 응원해 드립니다
봄꽃 두 송이
제 발로 반듯하게
홀로 서지 못하더라도
활짝 피어나 웃음 머금은
오순도순 할미꽃 두 송이
주름진 얼굴 위로 잔잔한 봄볕 가득
평온한 봄날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