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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Mar 10. 2024

초록의 시간 717 봄꽃 두 송이

송이송이 할미꽃

길을 걷다가 잠시 멈추었어요

바로 앞에 실버카를 밀고 가시던 할머니와

맞은편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오시던

할머니가 반가운 인사를 나누시더니

한참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셨거든요


두 분의 정다운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몇 걸음 뒤에 멈추어 서성거렸습니다

하하 호호 소녀들처럼 웃으며 

오순도순 재미난 이야기꽃에

웃음꽃까지 활짝 피우시더니

실버카 할머니가 아예

실버카 의자를 펴고 앉으셨어요


봄볕 아래 마주 앉으신

두 분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두어 걸음 뒤에서 마냥 서성일 수도 없고

두 분 사이를 더는 방해하지 않으려고

비잉 돌아 길을 건넜거든요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 보

할미꽃 두 송이가 봄바람에 나풀대듯이

실버카 할머니와 전동휠체어 할머니

두 분이 함께 하시우정의 시간이

눈부신 봄볕 아래 다정하고 애틋했어요


무슨 이야기를 나누시는 걸까요

뭐가 그리 신나고 재미나신 걸까요

봄꽃 두 송이가 소풍이라도 나온 듯

곱고도 애잔한 장면을 돌아보고

다시 또 돌아보았습니다


여름이 오면 큰 나무나 담장에 기대어

애처롭게 덩굴손을 뻗어나가며

송이마다 환하게 꽃등을 밝히는

주홍빛 능소화 꽃송이들이

문득 떠올랐어요


능소화는 곱고 화려하지만

홀로 반듯하게 고개 들지 못하고

어딘가에 손 내밀어 도움을 청하며

미안한 듯이 기대어 피는 꽃이라

볼 때마다 안쓰럽고 안타까웠어요


누군들 홀로 서지 못하고

손 내밀어 기대고 의지하며

피어나는 꽃이 되고 싶으랴~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지곤 했죠


송이송이 봄꽃송이 같은 두 분도

제 발로 멋지게 서서 보란 듯이

두 발로 또박또박 반듯하게 걸으며

마음만큼은 봄하늘 높이

가비얍게 날아오르고 싶으시겠죠


실버카에 의지해 걸어도

전동휠체어에 기대앉아 있어도

어느 누구에게나 봄길 꽃길은

포근하고 아름답고 눈부신 길이니

마음만이라도 가벼이 날아오르시라고

듬뿍 응원해 드립니다


봄꽃 두 송이

제 발로 반듯하게

홀로 서지 못하더라도

활짝 피어나 웃음 머금은

오순도순 할미꽃 두 송이

주름진 얼굴 위로 잔잔한 봄볕 가득

평온봄날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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