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25 아무개 씨에게 보내는
아무개의 봄 편지
아무개 씨에게 아무개가
손 내밀며 봄 인사를 건넵니다
풋풋 연초록 새순 돋아 오르는
새아씨 봄날의 마음으로
건네는 봄날의 손 편지는
무채색입니다
창밖은 맑거나 흐리거나
이미 파릇한 봄이어서
여기저기 들려오는 꽃소식으로
이미 꽃빛으로 환하고 명랑해서
무채색 편지까지도 금세
향기로운 꽃빛으로 물들 테니까요
아무것이라는 말이 있어요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것을 이를 때
아무거나~라고 자주 씁니다
마땅히 정하기 쉽지 않거나
분명히 밝히고 싶지 않거나
왠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시큰둥하게 아무렴 어떠냐고
툭 털어버리기도 합니다
아무거나 좋아 아무래도 괜찮아~
구체적인 이름 대신 뭉개는
아무개라는 이름도 있죠
이름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분명히 누구라고 부르는 대신
두리뭉실 모자이크를 한 이름
아무개가 있어요
아무나 오라~
아무도 없다~
꽃들이 저마다
고운 이름을 불리며 피어나듯
어느 누구든 아무개가 되기보다는
번듯한 이름 석 자 내세우고 싶을 테지만
인생은 다만 슬픔이라서
이름표 살짝 감추고 싶을 때도 있어요
무얼 하든 안 하든
아무개가 아무개 씨를 응원합니다
무얼 하더라도 쉬엄쉬엄
무얼 하지 않는 순간에도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쉼의 여유를 즐겨보기로 해요
꼭 무얼 해야 한다는 마음
봄길 위에 살짝 내려놓고
반드시 그럴듯한 사람이 되어
핀 조명을 받아야 한다는
그 마음 하나 곱게 접으면
편해지고 느긋해지고
너그럽게 웃을 수도 있으니
너무 애쓰지도 말고
버겁게 내달리지도 말고
넘어지면 잠시 쉬어가기로 해요
쉬는 마음으로 하늘을 보며
순하고 맑은 하늘빛이
포근하게 내 맘에 젖어들도록
바라보자 그냥 바라보자~ 고
아무개가 아무개 씨에게
오다 주운 봄날의 손 편지 한 장
바람결에 날려 보냅니다
세상 모든 고운 봄빛이
잔잔히 스며들 수 있게
무채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