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ring Apr 02. 2024

초록의 시간 732 길거리 캐스팅 중입니다

꼭 그 길이 아니어도 좋아요

요즘 뭐 하느냐 물으신다면

길거리 캐스팅 중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아마도

피식 웃으실지 몰라요


길거리 캐스팅 당할 만큼

사랑스러운 나이도 아니고

와락 눈길 사로잡을 만한

빛나는 외모는 더욱 아니고

더구나 수포자이긴 하지만

자신의 분수는 제대로 알고 있으니

부디 염려 놓으시길~


그냥 걷고 있을 뿐입니다

어느 날은 소란한 바람을 피해

또 어느 날은 제대로 바람맞으며

그러다가 바람과 나란히 함께

보송한 봄날 봄길을 걸으며

길거리 캐스팅 중입니다


예쁘고 멋진 사람 아니라도

봄나들이 나선 꽃들이 지천이

봄의 빛으로 꽃단장을 하고

길가에 꽃처럼 피어난 풍경들 시이를

스쳐 지나며 캐스팅 중입니다


머리카락 날리고 마음까지 헤집는

어수선한 봄바람을 피하며 걷다가

아하~ 그래 그렇구나

생각한 게 있어요

꼭 그 길이 아니어도 된다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 끄덕끄덕


바람이 좋을 땐 바람과 함께

바람이 지나가는 바람길을 걷고

바람을 살며시 피하고 싶을 땐

바람길이 아닌 사잇길을 걸으면 되고

멀리 비잉 돌아가더라도

바람 잔잔한 길을 걸을 수도 있으니까요


늘 가던 비람길에는 애정하는 카페가 있고

향기로운 꽃들이 반기는 꽃집도 있어요

어수선한 바람을 피해 사잇길로 들어서면

깔끔한 김밥집과 정겨빵집이 있고

요즘 유행을 알 수 있는 옷가게도 있고

좀 멀리 돌아서 천천히 걷다 보면

벚꽃길이 나를 반깁니다


항상 열려 있는 귀가 둘인 건

귀 기울여 잘 들으라는 의미도 있으나

귀에 거슬릴 때는 찌푸리지 말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는

깊은 뜻도 있듯이

가는 길이 여럿인 건

가끔은 다른 풍경을 보며

머릿속 생각들을 말끔히 비우고

새롭게 바꿔 보라는 거 아닐까요


아무리 좋은 길이라도

꼭 그 길만을 고집하지 않고

어제 그 길을 오늘 반복해 걷지 않고

어제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으며

봄날의 풍경을 캐스팅 중입니다


오늘 문득 내 눈에 들어온 건

생화가 아닌 꽃분홍 종이꽃인데요

조화는 꽃으로 여기지 않고 건너뛰던

찌질한 생각을 접고 한참 바라봅니다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결에

향기 한 줌 건네지 못하고

꽃망울 맺혔다가 피어나는

섬세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어도

종이꽃 역시 한 송이

봄에 피어났으니 봄꽃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며 나부끼다가

시들어 떨어지는 애틋함도

추억으로 남기지 못하지만

그 또한 종이꽃의 슬픔이니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마음에 담으리라 생각합니다


휘어져 굽은 길도 하나의 길이고

돌아가는 길도 의미 있는 이듯

만들어진 종이꽃도 꽃은 꽃이니

비록 풋풋한 향기가 없더라도

눈길을 건네며 다정히

꽃이라 불러줍니다


우리 가진 것들 중

진짜가 과연 몇이나 될까

부끄러운 마음으로

종이꽃무더기를 봅니다


그래 너도 꽃이다

스치듯 지나며 짧게 볼수록

화사하고 예쁜 꽃~

꽃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 하나로

이미 아름답고 애틋한 꽃

꽃분홍 봄날의 꽃~

작가의 이전글 초록의 시간 731 엄마는 사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