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41 꽃보다 연두
예의와 친절 사이
우리 아파트 바로 옆길에도
짤막하지만 아늑하고 고즈넉한
벚꽃길이 수줍게 숨어 있어요
바람이 하늘하늘 벚꽃비를 날려주는
그 길에 서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서
나무 아래 수북이 내려 쌓인
연분홍 벚꽃이파리들을 찍어
그리움의 향기와 함께
친구에게 날려 보냅니다
지금 벚꽃비~
내 문자에 날아온 친구의 답은
그때가 좋았어요
그 순간이 그립습니다~
그때가 좋았다는 것을
나 역시 몰랐습니다
늘 이웃에 있으니
그대로 있으려니 생각했었죠
모든 순간이 붙박이가 아님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고
나 역시 그 순간들이 그립습니다
친구 몫까지 한 번 더
벚꽃길을 걸으며 꽃비를 맞고는
파르르 따라온 분홍 이파리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공동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시 망설입니다
엘리베이터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지금 들어서는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문이 닫히는 대로
그냥 두어야 할까
지금 들어서는 그 누군가가
굳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운동 삼아 비상계단을 이용할 수도 있고
다시 밖으로 되돌아 나갈 수도 있고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도 있는데
문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야 할까
닫히는 대로 그냥 올라가야 할까
그냥 문이 닫히기를
잠시 기다리는 건 예의
일부러 문 열림을 누르고
기다려 주는 것은 친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활짝 눈부시게 피었다가
꽃비 내리며 떨어지는 꽃이 친절이라면
꽃 진 자리에 비죽 돋아나는
초록 잎사귀들은 예의겠죠
친절보다는 예의가
잔잔하고도 한결같은 마음이듯
피었다 후르르 지는 꽃보다
지금부터 푸르러지는 잎사귀들이
더 아름답고 싱그럽게 오래갑니다
봄꽃 필 때 보자 했으나
꽃은 금방 이울어
벚꽃비 날릴 때 만나지 못한 친구
신록 아래서 만나는 것도
우정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에
다시 톡 문자를 보냅니다
이번엔 미루지 말고
얼굴 봐요~
꽃보다 연두일 때
연두가 더 진해지기 전에 만나요~